[에디터 프리즘] ‘굥’ 그리고 ‘비나이다~’ 유감

김창우 2022. 11. 1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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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천주교 박주환 신부는 지난 5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이 주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에 참여해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박 신부는 “위패와 영정도 없는 가증스러운 참배로는 결코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이름도, 영정도 없는 곳에 국화꽃 분향만 이뤄지고 있다”며 명단 공개를 촉구했다. 그 결과일까. 지난 15일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정부의 통제된 애도에 고인들이 모독되고 있다”며 희생자 명단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반윤(反尹) 진영에서는 친여 언론이 명단 공개를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난 17일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69%는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 74%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주장’이라고 반대했다. 연령별로는 40~49세의 57%, 50~59세의 59%가 명단 공개에 찬성한 반면 18~29세의 63%, 30~39세의 62%는 반대했다. 40·50대 민주당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셈이다.

「 윤 대통령 떨어져 죽으라는 악담이
애도와 재발 방지에 무슨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해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정부가 여파를 축소하기 위해 희생자 명단 발표를 가로막고 있다는 음모론을 바탕에 깔고, 이걸 돌파하기 위한 전술로써 ‘과감하게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게 다 윤석열 정권 때문이고, 국민의힘과 국민의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때문이다, 그러니 다음 선거를 잘해서 민주당 찍자, 이게 그들이 낼 수 있는 실천적 결론”이라며 “과연 이게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사회적 결론인가”라고 되물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주당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태도는 반대를 넘어 증오에 가까운 것 같다. 이들은 윤 대통령을 ‘굥’이라고 부른다. 복자를 거꾸로 뒤집어 복이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중국의 관습을 원용해 윤 대통령이 떨어지길(당선 후에는 탄핵당하길) 바란다는 의미다. 정권 퇴진과 명단 공개를 외쳤던 박주환 신부는 지난 12일 소셜미디어에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사진과 함께 “기체 결함으로 인한 단순 사고였을 뿐… 누구 탓도 아닙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대한성공회 김규돈 신부도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천주교는 박 신부에 대해 성무(聖務) 집행정지 처분을 내리고 대국민 사과문을 게재했다. 대한성공회도 “사제로서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며 김 신부의 사제직을 박탈했다. 하지만 왜 잘못이냐는 게 반윤 진영의 속내인 것 같다.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박홍표 신부는 “떨어져 죽으라는 게 아니라 단지 윤 대통령 부부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패러디를 한 것”이라고 두둔했다. 이어 “기레기(기자들을 비하하는 말) 언론에 백기 들다니 참담하다”며 “촛불과 사제단과 깨어 있는 신자가 (박주환 신부를)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30년 전 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교통사고 등이 났을 때 희생자 사진 확보였다. 동그란 얼굴사진은 희생자 이름과 함께 신문 한구석에 실렸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훔치거나 몰래 희생자 집에 들어가 타사 기자들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앨범 채로 들고나온 무용담이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 사진은 신문에서 사라지고, 이름도 밝히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기자협회는 피해자 인권보호 등을 규정한 재난보도준칙을 마련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참사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을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당연한 일이다.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명단을 공개하고, 떨어져 죽으라 악담을 퍼붓는 것은 그리 시급하지도 않고 당연한 일도 아니다.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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