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어디 한번, 업혀 놀자!

2022. 11. 1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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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딪치며 어울리는 세상
누군가의 신세 좀 지면 어떠랴
그 감사함을 잊지만 않는다면
누군가 내 등에 업힐 날도 올 것

파리에서 후배가 왔다. 근 사년 만의 만남이었다. 내가 살림이 곤궁할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던 후배다. 지금은 후배의 살림이 곤궁하다. 믿기지 않게 내 책이 잘 나가 비행기표를 사줄 수 있었다. 곧 돌아가야 하는 후배는 시간에 쫓겨 자정이 넘은 시간에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나타났다. 제 짐이라곤 갈아입을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한 벌뿐, 나머지는 죄 내 선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 두 병에, 이십만 부 넘으면 터뜨리라는 샴페인 한 병에, 담배 네 보루에, 온갖 화장품에, 프랑스산 값비싼 버터에, 먹어본 적도 없는 트러플에, 짐을 빼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비행기삯을 죄 내 선물값으로 쓴 모양이었다. 몇 푼으로 마음의 짐을 덜려던 꼼수가 되레 두 배가 되어 돌아왔다.

아랫집에 소설 쓰는 선배 언니가 산다. 후배도 아는 선배다. 후배는 몇몇 사람이 요구한 것들을 사느라 언니 선물을 깜박했노라 전전긍긍했다. 진주 북콘서트에 다녀왔더니 몇 시간 만에 후배 얼굴이 밝았다. 나 없는 사이, 인터넷 쇼핑에 서툰 언니가 겨울 내의를 좀 검색해달라 부탁했단다. 그걸 후배가 결제한 거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랫집 언니가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신세를 질 수는 없다며. 선배와 후배는 돈봉투를 두고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였다. 끝나지 않을 싸움 같아 내가 중재에 나섰다. 일단 놓고 가라고.
정지아 소설가
후배 가는 날까지 계속 고민했다. 봉투를 후배에게 주어야 하나, 선배에게 돌려주어야 하나. 고민 끝에 후배 짐 쌀 때 몰래 봉투를 끼워 넣었다. 언니도 곤궁하긴 마찬가지나 먼 길 떠나는 사람이 우선일 것 같아서다. 후배가 전화하지 않는 걸 보니 아직 봉투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후배 보내놓고 혼자서 한참 웃었다.

나 없는 사이 후배가 선배에게 일장연설을 했단다. 제발 줄 생각만 하지 말고 남의 도움도 기꺼이 받으라고,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언니가 배시시 웃으며 요새는 잘 받는다고 했단다. 잘 받기는 개뿔, 후배나 선배나 거기서 거기다.

유독 받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랬다. 누가 호의를 베풀면 왜 이러지, 나한테 바라는 게 있나, 심지어 의심할 때도 있었다. 순수한 호의라는 걸 알게 되어도 자존심이 상해서 거절하기 일쑤였다. 자존심 강한 성정 탓일 수도 있겠고, 빨치산의 딸로 어렵게 산 후유증일 수도 있겠다. 주기는 좋아하고 받기는 싫어하는 이 마음을 한때는 순수거나 고결이거나,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쓸데없는 자존심일 뿐인 것 같다.

이번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은 창비 마케팅팀의 작품이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 제목에서 따온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제목에는 표절이 없다는 설명도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제목을 정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밤새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이 잊히지 않았다. 다음날 결정을 번복하면서, 소심하고 하찮은 나는 한 마디 변명거리도 잊지 않았다. 제목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다 창비 마케팅팀에게 떠넘기겠노라고 말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낯이 뜨겁다.

제목 하나 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 소설 제목도 그럴진대 대중을 상대로 하는 드라마는 오죽하랴. ‘나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을 정하기까지 작가와 피디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나는 거기 가볍게 업혀서 큰 도움을 받았다. 연락할 길은 없지만 언젠가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드라마팀의 누구든 크게 한턱 내야 할 것 같다. 연락을 주면 더 좋겠고. 신세를 지면 좀 어떠랴. 감사함만 잊지 않으면 된다. 인간은 어차피 신세를 지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 아닌가.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부모가 업어 키워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시킨다. 나이 들어도 힘들 때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어디 한번, 기왕 업힌 김에, 신명 나게 놀아보자. 언젠가는 누군가를 내 등에 업을 날도 있을 테니.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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