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국민 위로”…압력에 굴하지 않은 이란팀

윤은용 기자 2022. 11. 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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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아즈문 국가대표 발탁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이 17일 첫 공개훈련 중 사르다르 아즈문과 이야기하고 있다. 알 라이얀 | 권도현 기자
아미니 사망 이후 ‘히잡 시위’에
“침묵할 수 없다”며 지지 선언하자
정부·축구협회 엔트리 배제 압박
감독 “선수도 표현의 자유 있다”

이란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는 ‘에이스’ 사르다르 아즈문(27)의 발탁이었다.

지난 9월 이란의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금된 뒤 갑자기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한 이란 국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다. 아즈문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미니에게 일어난 일을 침묵할 수 없다. 국가대표에서 퇴출되더라도 상관없다”며 시위를 지지했다. 분노한 이란 정부와 이란축구협회가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에게 아즈문을 엔트리에서 제외하라고 압박했지만 케이로스 감독은 아즈문을 뽑으며 “선수들도 표현의 자유는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7일 카타르 알 라이얀의 알 라이얀 SC 트레이닝 센터에서 열린 이란의 훈련에는 아즈문의 참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취재진이 몰렸다. 케이로스 감독이 아즈문의 발탁을 강행했지만 이란 정부와 이란축구협회가 몽니를 부려 아즈문의 훈련을 막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아즈문은 밝은 표정으로 훈련에 나왔다. 훈련에 앞서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나누던 아즈문에게 알리레자 자한바크슈(페예노르트)가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뭔가 얘기하자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후 아즈문은 분위기를 주도하며 진지하게 훈련했다.

사실 아즈문뿐 아니라 이란 축구대표팀 모든 선수가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9월27일 열린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를 제창할 때 유니폼 위에 검은 재킷을 입어 국기를 가리기도 했다. 다만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정치적 발언을 했다가는 팀 전체에 불이익이 될 수 있어 표현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날 훈련을 앞두고 기자회견에 나선 자한바크슈는 한 영국 기자의 시위 관련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좀 더 정확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영어로 직접 대답하겠다”고 했다.

자한바크슈는 “솔직히 영국이 우리와 같은 조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당신이 이 질문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대표팀에 대한 의무를 벗어난 질문이었다면, 난 좀 더 다른 시점에서 답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를 하기까지 4일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린 축구를 하기 위해 여기에 있고, 그것이 모든 선수들이 집중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적인’ 의견은 밝히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자한바크슈는 해당 영국 기자를 향해 잠깐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모든 면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축구가 함께할 때 우린 기쁨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란)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란축구협회가 제동 걸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비켜가면서, 동시에 축구를 통해 이란 국민들을 돕겠다는 뜻을 교묘하게 담은 말이었다.

알 라이얀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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