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허연 2022. 11. 1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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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철학 개척한 유태인 사상가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
“족쇄 풀린 자유로운 의지, 그리고 사물들의 본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만물에는 안정적인 구조가 있다는 생각을 폭파해 날려 버리려는 시도. 이 두 가지는 지극히 값지고 중요한 이 운동의 가장 심오한, 가장 광기 어린 요인이다.”

역사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이사야 벌린이 낭만주의를 설명한 말이다. 벌린은 ‘자유’라는 모호한 개념을 이론화한 사상가로 매우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의 자유 이론은 다원주의(Pluralism)에서 출발한다. 다원주의란 뭔가?

간단하다. 개인이나 집단의 원칙이나 생각, 목표하는 바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사실 인류는 플라톤적 이상주의의 맹목적 지배를 오랜 시간 받아왔다. 플라톤적 이상은 진정한 질문은 단 하나의 답을 가진다고 믿는다. 또 발견된 진리는 다른 진리와 충돌하지 않으며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고 믿었다.

플라톤적 이상은 명백한 약점이 있다. 완전무결한 진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의견은 악(惡)이나 오류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이런 맹점 때문에 플라톤적 이상주의는 때로는 폭압적인 종교로, 때로는 전제주의나 파시즘의 얼굴을 하고 인류를 괴롭히기도 했다.

탁월한 역사학자 벌린은 단 하나의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인류가 발전했다고 믿는다. 바로 다원주의다. 이 다원주의는 낭만주의를 발명했고, 낭만주의는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었다. 다원주의적 태도는 자유로운 행동의 바탕이 됐고, 이것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족쇄 풀린 자유로운 의지, 그리고 만물에는 안정적인 구조가 있다는 생각을 폭파해 날려 버리려는 시도. 이 두 가지는 지극히 값지고 중요한 이 운동의 가장 광기 어린 요인이다.”

라트비아에서 부유한 유대인으로 태어난 벌린은 역사의 격동을 눈앞에서 체험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 러시아로 이주한 그는 볼셰비키 혁명을 체험한다. 혁명 이후 부르주아라는 이유로 탄압받자 벌린 일가는 다시 영국으로 이주한다.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약관 23세에 철학 교수가 되는 등 희대를 풍미한 지식인이 됐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의 삶은 또 바뀐다.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 때문에 외교관이 되어 전쟁 막전 막후에서 비밀스러우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벌린은 인간이 주인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런 가치들에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비극에 어울리는 영웅들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속물이고, 부르주아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며, 글을 쓸 가치도 없는 자이다.”

천재 벌린에게 낭만주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에게 낭만주의는 서구 세계의 가치관과 역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인간 선언이자 가장 강력한 증상이었던 것이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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