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 “이젠 새로운 세대의 시간” 미 민주당 지도부서 퇴진
하원 원내대표·여성 첫 하원의장 등
20년 활동…‘트럼프 저격수’ 역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82)이 17일(현지시간) 20년 만에 민주당 지도부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11·8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 과반 기준인 218석 확보를 확정한 이튿날 퇴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민주당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하원 연설에서 내년 1월 시작되는 새 의회에서 당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우리는 대담하게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즐겨 입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흰색 정장 차림이었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직을 두 차례 수행했다.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에 오른 2007년 1월부터 4년, 민주당이 다수당을 탈환한 2019년 1월 이후 현재까지다. 하원 원내대표 기간까지 합하면 20년간 하원에서 민주당의 리더 역할을 했다.
하원의장 시절 그는 오바마케어(의료개혁법안)부터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민주당 주도 입법안을 처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역사는 그를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은 특히 2007년 7월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하원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인 2019년 1월 그가 두 번째 하원의장에 출마했을 때는 고령 등을 이유로 반대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독주 저지에 펠로시 의장만 한 적임자가 없다는 의견이 용퇴론을 압도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 차례의 탄핵소추안이 하원에서 가결되도록 이끄는 등 ‘트럼프 저격수’ 역할을 했다.
펠로시 의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뉴욕타임스는 “그처럼 오랫동안 보수층의 히스테리를 자아낸 인물도 없었다”면서도 진보 진영, 특히 민주당 내 젊은층 사이에선 “너무 기득권이다. 너무 타협적이다. 지금의 정치적 위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지난 8월 백악관과 국무부의 만류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중간선거 직전 자택에 침입한 괴한에게 남편 폴이 피습을 당한 후에는 트라우마와 생존자로서의 죄책감까지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볼티모어 시장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선거 유세를 가까이서 봤던 그는 1987년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다섯 자녀를 키우는 47세 전업주부였다. 타고난 언변과 협상력, 자금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당 중심부에 진입했다. 그는 이날 여성 의원 수가 1987년 12명에서 90명으로 늘어났다며 “이제 아름다운 미국의 구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원의장에서 내려오는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하는 캘리포니아 11구의 ‘19선’ 의원이자 평당원으로 돌아간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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