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위를 걷듯 ‘백인으로 살기’[책과 삶]
벨 그린
마리 베네딕트·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 지음
김지원 옮김 | 이덴스리벨 | 480쪽 | 1만8500원
인종차별이 심한 20세기 초 미국 뉴욕을 살아가는 당신이 만일 백인으로 ‘패싱’될 만큼 밝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라면? 모르긴 해도 꽤 많은 이들이 ‘백인’으로 살기를 택하지 않을까.
<벨 그린>은 흑인 신분을 숨기고 백인으로 살았던 벨 다 코스타 그린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린은 미국의 전설적인 금융 황제 존 피어폰트(JP) 모건의 개인 사서이자 모건 도서관의 초대 관장을 지낸 실존 인물이다. 유달리 피부가 희었던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포르투갈계 이민자의 후손이 되기로 한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지성과 예술적 안목 덕분에 뉴욕 사교계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소설은 흑인 최초의 하버드대 졸업생이자 유명한 흑인 평등 주창자인 리처드 그리너의 딸이기도 한 그가 어쩌다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백인으로 살게 되었는지 그린다. 역사소설 작가 마리 베네딕트와 현대소설 작가 빅토리아 크리스토퍼 머레이는 그린과 관련한 공식 기록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했다. 흑인에게 적대적이었던 사회에서 백인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겪었을 괴로움은 상상으로 채워넣었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모건의 밑에서 일한 그에겐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린은 백인의 삶을 택하며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됐지만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는 없었다. 결혼해 낳은 아이의 피부가 검을 경우 벌어질 일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기 때문이다. 이기심으로 흑인 커뮤니티를 배반했다는 손가락질을 당했지만 그린이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린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는 그린이 평생 느꼈을 불안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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