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은 많아? 그럼 반병만 까쇼”…소주병에 와인 담은 이 남자 [인터뷰]

이상현 2022. 11.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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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소주병에 카베르네 소비뇽 담아
홈술족 부담 줄여 인기…20만병 팔려
‘와인 반병 까쇼’를 선보인 소병남 BGF리테일 음용식품팀 MD. [사진 제공 = BGF리테일]
“같은 게 없다. 단일 품종이라도 온도 변화나 숙성 연도, 방식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은 좋아도 내년엔 어떨지 모른다. 정답이 없다. 그래서 와인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

BGF리테일 상품본부 음용식품팀에서 주류 카테고리 업무를 맡고 있는 소병남 MD는 매경닷컴과 인터뷰에서 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개성 하나 없는 공산품처럼 보일지라도 그 맛과 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디자인·맛 모두 ‘간편성’에서 영감 얻어

소 MD는 지난 9월 말 편의점 CU가 출시한 ‘와인 반병 까쇼(이하 반병 까쇼)’를 기획한 인물이다.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13년여간 바이어 업무와 상품기획 등 와인 관련 직무를 담당한 그는 지난 5월 BGF리테일에 합류했다.

자리를 새로 잡은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건만, 반병 까쇼가 대박이 났다. 이 제품은 용량을 시중 와인의 절반 수준인 360㎖로 줄이고, 소주병을 포장재로 활용한 점이 특징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원액을 사용한 데서 이름을 따왔다.

참신한 외관이지만, 처음부터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려던 건 아니었다. 고민의 출발점은 ‘간편성’이었다.

소 MD는 “평소에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가 아니라면 한 번에 한 병(750㎖)을 다 마시기는 힘들다”며 “조금 더 간편하게 즐길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용량이 작은) 소주병에 와인을 담아보자는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담감을 줄여보자는 생각은 와인의 품종을 결정할 때도 이어졌다. 중저가 가격대에서 튀는 맛 없이 가장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 현재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품종,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이 그의 선택이었다.

소 MD는 “플렉시탱크(Flexitank)라는 게 있다. 원액을 탱크에 이중, 삼중으로 봉인한 상태로 산지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병입하는 방식”이라며 “공기에 접촉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와인이 산화하는 등 맛의 변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와인에 병입하는 역할은 소주 업체인 대선주조가 맡았다. 담긴 내용물이 다를지라도 공병을 처리하는 절차는 일반 소주병과 똑같다.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도, 공병 보증금이 100원인 것도 모두 동일하다.

‘와인 반병 까쇼’를 선보인 소병남 BGF리테일 음용식품팀 MD. [사진 제공 = BGF리테일]
◆ ‘고급 술’ 이미지 탈피…“호흡 맞춰갈 것”

소주병에 담아내면 상품 가치가 저평가될 것이란 우려는 없었을까.

소 MD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와인을 마시는 분위기는 어두운 조명에 잘 갖추어진 스테이크, 푸드 페어링과 음악 등이 어우러진 상태”라며 “반병까쇼는 데일리 콘셉트로 나온 술이다. 집에서 식사하려다가 ‘한 병 사자’고 하면 슬리퍼 신고 집 근처에 가서 소주 한 병 사 오듯 편하게, 접근성 좋게 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간편성에 초점을 맞춘 덕분인지 제품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반병까쇼는 지난 9월 말 출시된 뒤 최근까지 약 20만병이 판매됐다. 최근 2주(11월 1~14일)간 매출이 출시 직후 2주(9월 28일~10월 11일)보다 63.7% 높다. 인기가 시들해질 법한 시기인데 오히려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다.

어깨에 제법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소 MD는 “소비자들과 제가 호흡을 조금 맞춰가는 단계라 생각한다”며 시장을 신중하게 관망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MD가 확신을 갖고 어느 가격대에 최고 와인을 런칭한다고 했을 때 소비자들이 따라와 주는 것.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며 “소비자 반응을 더 살펴보고 (시리즈 기획이나 후속작 출시 등을) 결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해서는 “최근 2~3년간 급성장했지만, 코로나19가 풀리면서 (와인 등을) 즐겼던 소비자들이 다른 주종으로도 이탈하는 분위기”라며 “일종의 조정기라고 생각한다. 조정기가 끝나면 다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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