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 아이돌' 신정주

홍성완 기자 2022. 11. 1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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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A 원년 깜짝 우승한 부산의 신예
스타성 갖춘 당구계 ‘아이콘’ 떠올라
프로당구 선수 신정주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홍성완 기자] 프로당구(PBA) 출범 원년이었던 2019년, 당구 팬들은 1차 대회에서 그리스 출신인 필리포스 카시도코스타스(하나카드)가 우승하자 2차 대회에선 내심 국내 선수의 우승을 기대했다. PBA가 출범한 이후 외국인 선수의 독주가 이어지면 한껏 달아올랐던 프로당구의 인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예 선수가 2차 신한금융투자 PBA 챔피언십 8강에서 필리포스를 꺾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부산 출신의 신정주(27·하나카드) 선수다. 그는 필리포스를 꺾은 후 내친김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훤칠한 키와 외모로 '당구 아이돌'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신정주. 중장년층 팬들이 대다수인 당구 종목에 스타성을 갖춘 '젊은 피'가 수혈된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팀 리그 경기를 마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중학생 때 전국체전 준우승 이어
    세계주니어선수권 준우승 기록

신정주는 중학교 때 처음 당구를 접했다. 당구 동호인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2학년인 15살에 당구를 처음 배웠다.

"아버지가 당구를 좋아하셨어요. 동호인 활동을 할 정도였지만, 그 당시 저는 아예 당구에 대해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니까 뭐라도 한번 배워보라고 당구를 권해주셨던 거죠."

반항기가 시작된 사춘기 시절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부모의 권유에 떠밀려서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자연스럽게 재미를 붙이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신정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오히려 조금 힘들었죠. 재미보다는 기본기 위주로 배우다 보니 반복 연습만 했거든요. 처음부터 취미가 아닌 정식 과정으로 배웠기 때문에 아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신정주의 재능은 1년 후부터 꽃을 피웠다. 중학교 3학년 때 선수등록을 하고 전국체전에 나가 2위를 기록했다. 마침 당구부가 창설된 고등학교 특기생으로 들어가 당구에 더 매진할 수 있었다. 특히 같은 동네의 최영운(부산당구연맹) 선수 문하로 들어가 기본기는 물론 게임 운영에 대한 방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아둔 덕분일까. 신정주는 이기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당구 자체의 재미보다 당구를 통한 승리의 쾌감을 알아갔다.

"처음 배울 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당구가 재미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연습 자체가 재밌거나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시합을 나가서 이길 때의 쾌감과 기쁨은 정말 좋아요. 그 순간을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신정주가 경기도 일산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한 신정주는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처음 참가한 2015년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고 2016년에는 '당구 신동'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 선수에게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PBA 출범과 함께 프로당구 선수의 길을 택한 신정주는 선발전을 통해 1부 리그에서 출발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저도 사실 그렇게 갑자기 우승할 줄 몰랐어요. 그때 결승전 상대가 조건휘(SK렌터카) 선수였는데 이기고 나서 그냥 꿈만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그때였던 것 같아요. 결승까지 올라가는 것도 너무 드라마틱했거든요."

'2019 신한금융투자 PBA 챔피언십'에서 신정주는 서바이벌 예선과 32강을 치르며 거의 탈락할 뻔하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듯했다. 8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필리포스를 세트 스코어 3 대 1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준결승에 올랐다.

"필리포스 선수가 전 대회 우승자였어요. 주변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네가 필리포스를 막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PBA 출범 초창기였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2회 연속 외국인 선수가 우승하면 국내 선수와 해외 선수들 사이에 편차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꼭 이겨야 한다는 말을 50명한테는 들은 것 같아요. 사실 부담이 컸는데 그걸 극복하고 이겼던 만큼 더 기뻤습니다."

큰 부담감을 이겨내고 승리를 거머쥔 그는 준결승에서 대선배인 신남호 선수와 만나 더 짜릿한 승부를 펼치게 된다. 우승 과정을 돌이켜보면 내용으로 볼 때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다음 4강전에서 정말 극적으로 이겼어요. 제가 1, 2세트는 평소보다도 경기가 잘 돼서 쉽게 가져왔거든요. 그리고 3세트도 거의 제가 이기는 분위기였어요. 2점을 남기고 뱅크샷을 시도했는데 진짜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공이 빠졌죠. 그런데 신남호 선수가 한 번에 6득점을 하면서 3세트를 내주게 된 겁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역전되면서 4세트도 쉽게 내줬고요. 마지막 5세트가 11점 경기였는데, 제가 0대 7로 뒤진 상황에서 극적으로 역전에 성공해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그래서 결승보다는 8강하고 4강전이 더 기억에 남아요."

(사진 왼쪽, 오른쪽 위) 2019-20시즌 2차투어 신한금융투자 챔피언십 우승 당시 모습. (사진제공=PBA). (오른쪽 아래) 2016년 주니어선수권 준우승.(사진출처=코줌 코리아)

 ◆ 2번 탈락 위기 넘고 개인 우승    
     "이제는 팀 리그 우승 간절"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경기가 있지만, 아쉬운 경기도 있기 마련이다. 신정주는 가장 아쉬웠던 경기로 2021년 11월에 열린 '3차 휴온스 PBA 챔피언십' 준결승전을 꼽았다.

당시 그는 8강에서 '세계 4대 천왕'으로 불리는 프레드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을 꺾으며 4강에 안착했다. 8강에서 필리포스를 꺾고 우승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며 신정주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높아졌다.

4강 상대는 벨기에의 에디 레펜스(SK렌터카). 1969년생으로 엄청난 관록을 자랑하는 레펜스를 맞아 신정주는 꿋꿋하게 맞섰다.

대접전 끝에 15 대 13으로 첫 세트를 따낸 신정주는 2세트와 3세트, 4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젊은 패기로 5세트와 6세트를 연달아 따내는 뒷심을 발휘해 3 대 3 동점으로 마지막 7세트에 돌입했다.

"마지막 게임이 정말 아쉬웠어요. 거의 끝난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9 대 6으로 앞서 2점만 남은 상황에서 뱅크샷을 쳤는데 정말 백번 치면 한두 번 빠지는 그런 공이 나왔어요.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득점인 줄 알고 환호까지 했는데 그게 그대로 빠지더라고요. 결국 레펜스 선수가 바로 5점을 내면서 경기가 끝났죠. 그때는 정말 천당과 지옥을 한순간에 맛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신정주는 프로 리그에서 꾸준하게 성적을 내고 있다. 2019년 우승 외에도 '2019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 챔피언십' 8강, '2020 3차 PBA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 4강, '2021 3차 휴온스 PBA 챔피언십' 4강, '2022 SK렌터카 PBA 월드 챔피언십' 8강, '2022 3차 TS샴푸‧푸라닭 챔피언십' 8강 등 매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꾸준한 성적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우승 이후에 어떻게 보면 계속 슬럼프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승 후의 성적이 제 본래 실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실 우승하고 나서 부담감이 좀 컸어요. 좋은 성적을 내고 난 후에 성적이 안 나와서 자신감도 떨어졌거든요. 팀 리그에 합류해서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 컸죠. 그래서인지 성적이 더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스스로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주변에 조언도 많이 구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솔직히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신정주가 경기도 일산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서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사실 팀 리그 첫해부터 팀에 소속돼 리그를 치러온 만큼 자신이 누구보다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인터뷰 직전 시합에서 하나카드는 NH농협카드에 3 대 4로 패배했다. 신정주는 동점인 상황에서 마지막 세트에 출전했지만 아쉽게도 패배했다. 결국 하나카드는 1승 4패를 기록하며 올해 후기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포스트 시즌 진출은 몇 번 해봤지만, 그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졌어요. 이번에는 팀 분위기도 나쁘지 않고 전기 리그에 이미 포스트 시즌을 확정해 놓은 만큼 꼭 우승하고 싶어요. 개인전 우승도 좋지만 팀 우승을 더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팀 동료들이 많이 챙겨주는 만큼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이 크죠."

개인전 우승은 경험했어도 팀 리그 우승을 못해 봤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는 그다. 그래서 스스로 더 분발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 팀이 후반기 성적은 안 좋지만, 팀원들이 모두 워낙 잘 치는 분들이고 저만 잘하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제가 지는 바람에 팀이 졌거든요. 제가 더 분발해서 팀 에이스까지는 아니어도 맡은 역할을 충분히 하는, 기복 없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 평범한 삶 동경하는 20대 청년  
    "당구의 손흥민으로 기억되고파"

쿠드롱 등 세계적인 강호는 물론 국내 정상권 선수들과 맞붙으며 20대의 젊은 선수가 꾸준한 성적을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범한 20대의 삶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포기하고 버려야 할 일상이 많다. 그는 주변의 친구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도 내비쳤다.

"당구를 시작하고 친구들을 많이 못 만났어요. 그래서 좀 서러웠다고 해야 하나. '내가 왜 놀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에 스트레스와 불만이 쌓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엄하셔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셨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평범하게 고등학교와 대학에 가고, 그리고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며 연애하고 결혼도 하는 그런 삶이요.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만 했지, 아르바이트조차 해 본 적이 없거든요."

프로당구 선수 신정주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그렇다고 신정주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로당구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성인이 된 후 대한당구연맹 시절 성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32강전의 벽을 항상 넘지 못하는 부진이 이어졌다. 그때 정신적인 버팀목은 부모님이었다.

"제가 PBA로 넘어오기 전에 성적도 안 좋고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부모님이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신 게 지금도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또 팀원들이나 구단주님께도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개인과 팀 우승 외에 굳이 목표가 있다면 꾸준하게 오래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대한민국 축구의 상징인 손흥민 선수처럼 당구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홍성완 스포츠한국 기자 seongwan6262@gmail.com

사진=이혜영 기자 i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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