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목소리와 기타', 기댈 곳이 없다는 게 유독 힘들었다"

이재훈 기자 2022. 11.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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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정규 10집 '목소리와 기타' 발매
소속사 안테나 통한 소감
12월 2~4일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서울=뉴시스] 루시드폴. 2022.11.18. (사진 = 안테나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언제나 앨범 작업은 제 수명을 갉아먹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유독 힘들었던 건, 어디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섬고양이'의 심정이었다고 할까.) 기타 소리는 목소리에만 의지해야 하고, 목소리는 기타 소리에만 의지할 수 있을 뿐, 숨을 곳도 없고 숨겨줄 곳도 없고, 대신 불러줄 사람도, 대신 공간을 채워줄 다른 악기도 없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어려운 건 채우는 게 아니라 빼는 거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47·조윤석)이 목소리와 기타로만 채운 정규 10집 '목소리와 기타'가 증명한다.

루시드폴은 18일 소속사 안테나를 통해 "저의 목소리 그리고 저의 오랜 동반자인 나일론 기타로만 연주하고 노래한 앨범이다. 다른 악기도, 동료도 없이 오직 저희 둘만 참여한 앨범이다.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연주한 곡은 그동안 여럿 있었는데 전 곡을 이렇게 채운 앨범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루시드폴이 전날 발매한 '목소리와 기타'는 지난 2019년 발표한 정규 9집 '너와 나'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정규다. 타이틀곡 '사피엔스'를 비롯 '한 줌의 노래', '진술서', '섬고양이', '용서해 주오', '홍옥', '알바트로스', '달맞이꽃'까지 총 8트랙이 수록됐다.

루시드폴은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라고 했다. "2019년 정규 9집 '너와 나'를 내고 나서 시작한 여행 같기도, 2001년 '루시드폴'로서 첫 앨범을 내면서 시작한 여행 같기도 하다. 심지어 처음 '기타'를 만나고 품에 안았던 꼬꼬마 어린 시절 시작한 여행 같기도 하다"고 돌아봤다.

브라질 음악에서는 나일론 기타를 '비올라옹(violão)'이라고 부른다. 보사노바, 삼바, 쇼루(19세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유래한, 브라질의 대중적인 기악 음악) 등 음악을 연주할 때 빠질 수 없는 악기다.

브라질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란 루시드폴은 자신이 사랑하는 많은 브라질 가수들이 '목소리와 기타'(Voz e Violão)라는 제목의 앨범 역시 많이 접했다고 했다. 그러니 어쩌면 "이 앨범은 저를 뮤지션으로 키워준 위대한 브라질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여겼다.

특히 자신이 서른살이 된 무렵, 브라질 가수 마시우 파라쿠(Márcio Faraco)가 자신의 목소리와 기타(그리고 아주 약간의 퍼커션)만으로 만든 앨범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앨범 속지에 적힌 글귀를 루시드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동안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이런 큰 모험을 하기에 이르다 싶어 줄곧 거절해왔다'는 얘기였다.

루시드폴은 "마시우가 이 '목소리와 기타' 앨범을 낸 것이 4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아, 나도 언젠가 이런 모험 같은 앨범을 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소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시우와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 비로소 소망이 이뤄졌다"고 뿌듯해했다.

타이틀곡 '사피엔스'는 매우 희한한 조율법을 사용한 이번 앨범에서도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 루시드폴은 베르디 튜닝(Verdi’s tuning)이라 불리는 튜닝법(A4=432㎐)을 이번 앨범에서 사용했는데, 스탠더드 튜닝(A4=440㎐)에 비해 음을 낮게 튜닝했다. 노래들이 훨씬 느긋하고 온화한 느낌으로 느껴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루시드폴은 "(절대 음감이 있는 분들에게는 어딘가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기타 연주 역시 대부분 변칙 튜닝을 사용했다. '사피엔스'의 경우 (Eb-Gb-Db-Gb-Bb-Db)으로 줄을 맞췄는데, 보통은 E-A-D-G-B-E로 기타 줄을 맞춘다. 곡마다 조금씩 다른 튜닝법으로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지금 따져 보니 모두 7가지의 다른 튜닝법을 사용했다"고 귀띔했다.

'사피엔스'는 라틴어로 '현명하다'는 의미다.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라면 '현명한 인류'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루시드폴은 "우리 인류는 과연 '현명한 존재들인가'라는 의문을 언제나 가지곤 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루시드폴. 2022.11.18. (사진 = 안테나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트랙 제목 중 '홍옥'은 오래된 사과 품종 이름이기도 하다. 요즘 나오는 사과에 비하면 아주 작다. 어릴 적에는 홍옥 같은 '새콤달콤'한 사과가 많았다고 루시드폴은 기억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가을이 오면 항상 어렵게 홍옥을 구해 먹는데 그 빨갛고 앙증맞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저도 모르게 '아, 가을이 왔네' 하고 느낀다"고 했다.

귤농사를 짓는, 과일 농부가 된 지금엔 자신이 맛있고 풍성하다 느끼는 귤 맛을 어떤 사람들은 그저 '시다'며 싫어할 때가 있다며 "이 노래 가사처럼 '마냥 달지는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참맛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맛이 '당도'라는 수치 하나로 평가되는 건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알바트로스'는 루시드폴이 살고 있는 제주 바다 그리고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Chris Jordan)의 '알바트로스'가 큰 모티브가 된 곡이다. 그러고 보니, '섬고양이', '달맞이꽃', '알바트로스' 이 세 곡은 모두 루시드폴이 바닷가에 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가사다.

루시드폴은 곡을 고르고 추려내는 것 역시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아무런 메이크업도 없이 목소리와 기타의 생얼만으로 설득력 있고 완성도 있는 곡이 돼야 했다"고 전했다. 100여 개가 넘는 스케치 파일들, 몇십 곡의 조각 곡들을 정리하고 추려서, 가사까지 만들어낸 완성곡이 15곡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겨우 8곡만 앨범에 담겼다.

그런데 '가요계 음유시인'이라는 불리는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로 무려 '모든 곡'의 노랫말을 꼽았다. "'노래'는 참 신비한 존재다. 꽤 많은 노래를 만들어왔지만 저는 아직도 어떻게 노래가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제 안에 고여 있는 많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가 어떤 찰나 혹은 우연 혹은 필연으로 만나게 되고 조금씩 조금씩 '노래'라는 형태를 띠다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태어나는데 그런 노래를 만든 저조차도 그 과정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신비롭다."

루시드폴은 오는 12월 2~4일 이번 앨범 발매 기념 공연도 앞두고 있다.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공연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많았지만 유난히 외로웠던 이번 앨범 작업을 마친 마당에 '공연장에서라도 어디 기댈 곳은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피아니스트 조윤성, 퍼커셔니스트 파코 드 진이 함께 한다. 블랙박스 공연장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연주한다. 그런 이들의 뒤를 관객들이 감싸는 구조다.

루시드폴은 "3년 동안 오로지 혼자 노래하던 방에서 벗어나서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연주에도 기대어보고 관객들과 함께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그런 공연이 되면 좋겠다. '함께'라는 것. 그것만큼 요즘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이번 앨범은 CD가 아닌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출시됐다. 최근 LP판매량이 국내에서도 급증하고 있고 다른 음반들도 카세트테이프로 출시되는 경우가 있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반적인 포맷 형태는 아니다. 루시드폴은 이와 관련 최근 소셜 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저는 많은 분이 여러 방식으로 이 앨범을 '감각'하면 좋겠다 바랐습니다. 스트리밍은 물론이지만, 쨍한 24bit/96㎑ 고음질 디지털로도, 짙고 단단한 바이닐로도, 로-파이한 카세트테이프로도 제 음반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망했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떠안아준 안테나 여러분께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다만 CD를 기다린 분들께 무척 죄송합니다. 그저 LP와 테이프에 들어있는 고음질 음원으로 아쉬움을 달래주십사 청해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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