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메시에게 패스?”…축구성지 바르사는 그렇게 몰락했다 [BOOKS]

김유태 2022. 11. 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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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사, 사이먼 쿠퍼 지음
서형욱 옮김, 틈새책방 펴냄

4년 마다 딱 한 번 오는 계절, 축구의 계절이다.

여름에 열리든 겨울에 열리든, 저 위험한 계절의 기온은 타는 듯한 응원 열기로 늘 ‘섭씨 36.5도’ 이상이다. 허나 절기는 나라마다 달라서, 위도나 경도와 무관하게 일찍 혹한기가 오기도 하고(16강 탈락), 끝내 생존한 2개 국가 중 한 곳은 결승전이 끝나도 한동안 열기가 이어지기도 한다(월드컵 우승). 또 예선 탈락한 나라엔 아예 계절이 찾아오지 않고, 20년 전 계절을 반복 재생하는 한국이란 나라도 있다.

월드컵도 4년에 한 번뿐이거늘, 사시사철 이상기온이 유지되는 성지(聖地)가 있으니 바로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 노우(Camp Nou)다. ‘축알못’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인 FC바르셀로나의 전용구장이다.

FC 바르셀로나(바르사)의 흥망을 다룬, 축구팬이라면 진짜 이건 정말이지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책이 출간됐다. 요한 크루이프를 받아들인 뒤 최고 클럽으로 발돋움하고, 리오넬 메시가 완성시킨 바르사가 어느 날부터 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취재는 무려 1992년 시작됐는데, 스포츠 저술가인 저자는 클럽 선수와 경영진과 소시(soci·바르사 회원)를 만나 30년 만에 역작을 내놨다.

먼저 바르사의 성장부터. 먼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크루이프즘’이란 단어를 관통해야 한다.

요한 크루이프(1947~2016)는 위대한 바르사의 창조주였다. 그는 바르사의 감독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리더, 나아가 ‘축구 철학자’였다. 끊임없는 공격을 내세운 신나는 전진 압박 축구의 아버지. 그의 수제자인 펩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는 대성당을 건설했다. 그는 현대 축구 그 자체를 창조해낸 인물이었다”고 정의한다. 유명한 ‘티키타카’ 전술은 크루이프즘을 구현한 바르사의 현시와 같았다. ‘생각의 속도를 높이면 위험을 줄이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크루이프의 축구 사상은 바르사에서 뿌리내려 위대한 클럽을 만들었다.

크루이프 최고의 순간은 2010년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외견상으론 ‘스페인 대 네덜란드’ 전이었지만(결국 스페인 우승), 사실 이 결승전은 ‘크루이프 대 크루이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기에 뛴 스페인 대표팀 선수 7명,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 7명이 크루이프식 스페인ㆍ네덜란드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었을 정도였다.

크루이프식 축구의 대성당을 업데이트한 건 리오넬 메시였다. 작은 키와 짧은 스텝, 그 덕분에 공을 계속 터치하면서 새 동작을 해낼 수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천재. 호날두가 초당 공을 두 번 터치할 때 메시는 세 번 터치했고, 상대 수비수가 땅에 발을 한 번 디딜 때 메시는 세 번 디뎠다. 메시의 천재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메시는 5~10분만 지나면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넣었다. 정확히 어디에 공간이 있는지 전체를 조망했다.” 그를 지도한 펩 과르디올라의 말이다.

그렇게, FC바르셀로나는 ‘FC메시’가 됐다.

클로드 모네가 일주일에 걸작 2편을 만드는 것과 같은 천재성이 메시의 발동작에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FC메시’란 단어는 프로페셔널한 천재성을 지닌 21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메시만을 뜻하진 않았다. 바르사의 ‘메시 전략’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바르사는 메시를 위해 선수와 감독을 희생시켜야 했다. 과르디올라는 또 다른 자리에서 고백했다. “바르사를 지도하는 건 기본적으로 메시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파이널 서드(공격 영역)에 가면 메시가 어디에 있든 패스하라.’ 이것이 바르사가 선택한 전략이었다. 평온한 미소 뒤에 감춰둔 메시의 불같은 성격도 메시의 권력 집중화를 가속화했다. 바르사만의 패스 언어는 사라지고, 바르사 1군은 FC바르셀로나만의 축구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골키퍼 두덱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저렇게 예의 바른 친구가 페페나 라모스한테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 했을걸요.”

이후 방만한 경영과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라는 악재가 바르사의 몰락을 추동하기 시작했다. 메시의 연봉은 1억5000만 유로. 선수단이 가져가는 임금은 7억 유로였다. 매출 11억 유로 중 상당액이 선수들의 고연봉에 사용됐다. 코로나19로 스페인 봉쇄가 시작되자 바르사는 선수에게 임금 삭감을 요청했는데 메시는 분노를 표했다. 고참 선수들은 바르사 직원 평균 임금이 ‘3만 유로’란 걸 알고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만 유로가 ‘월급’이라고 생각한 선수들의 착각과 달리 그건 ‘연봉’이었다. 바르사는 메시와 그의 오랜 친구들을 위한 팀으로 바뀌고 있었다고 저자는 쓴다.

바르사의 메시 전략은 당대로선 정답이었다. 하지만 메시 같은 선수는 대체가 불가능하고, 메시 전략이 현재 흔들리는 바르사를 만들어버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021년 메시가 바르사를 떠나면서 좋았던 한 시절은 종언을 고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의 바르사는 ‘이민족들이 이미 성문 안으로 들어온 서기 400년 무렵의 로마’와 같다. 바르사는 여전히 선수들이 오고 싶어 하는 구단이지만 크루이프의 축구 스타일은 오히려 맨체스터와 뮌헨에서 구현된다.

크루이프의 철학이 옅어진 바르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억하고 싶던 바르사가 아니라고 저자는 칼날 같은 문장으로 꼬집는다. 영국에서 ‘2022년 올해의 축구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바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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