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멍청함을 자랑하는 문화

2022. 11.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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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수의 책과 미래 ◆

인터넷은 사람들을 똑똑하게 하기보다 멍청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다. 익명성의 장벽 뒤에 숨어서 사람들은 누가 더 멍청한가를 경쟁하는 듯하다. 가짜 뉴스를 퍼뜨려 한 사회가 애써 이룩한 지성과 신뢰의 약속을 깨고, 무례한 행동을 자랑하면서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배신한다. 혐오와 증오를 일삼아 일상의 도덕 감각을 망가뜨리고, '내 편 놀이'에 빠져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자들을 옹호함으로써 사회 정의를 파괴한다.

'내 주변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에서 프랑스 심리학자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은 "멍청한 인간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면 순진"한 생각이고, "멍청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수록 멍청한 인간은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비난을 받으면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맞지만 세상에 도전했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행한다.

현대의 멍청이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리를 활보하고 공개적으로 떠든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좌표를 찍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거짓말로 후원금을 챙긴 후 들통나도 자숙 없이 비슷한 행위를 거듭한다.

멍청한 인간은 세상의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눈치 없이 행동한다. 아침에 동료가 울고 있는데도, "안녕, 별일 없지?" 하고 습관적 인사를 내뱉고, 연인의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변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자기한테만 관심이 있어서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한다.

또한 멍청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공유된 믿음인 정의와 공정의 감각을 외면하고 딴소리를 지껄인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멍청한 인간은 피해자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약자가 목숨 걸고 싸울 때 관심을 기울여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법을 왜 지키지 않느냐면서 윽박지른다. 이들은 잘못을 지적하면, 다른 사람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다고 우기고 본다. 설령 타인이 비슷한 행동을 했더라도 자신의 멍청함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멍청한 사람들은 비꼬는 성향에 남을 잘 믿지 못하고, 자신에겐 무척 관대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질문을 던져보면 상대가 멍청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멍청이들은 "다 썩어빠졌군" "전부 장사꾼들뿐이야"와 같이 단정적으로 말한다. 또한 타인의 성취를 흔히 무시한다. "변호사 되기 쉬워. 법만 달달 외우면 되잖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멍청함을 자랑하는 문화에 빠져들고 있다. 어리석음이 기승을 부리는 세상에서 누가 멍청한지 분별하는 힘을 얻고, 자신도 모르게 멍청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은 지혜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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