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시각] 네트워크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

2022. 11. 18. 1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파편화 다음엔 연결의 시대
적당한 거리감 유지하면서
도움 주고받는 선의의 연대

◆ 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

최근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네트워크 시대'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온라인 등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망'을 형성하는 시대라는 의미에서다. 과거처럼 내가 속한 물질적인 공간인 마을이나 동네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보다 느슨한 연결망으로 서로 '접속'된 상태가 이 시대의 특성인 것이다.

네트워크 시대의 핵심은 개인이다. 과거처럼 하나의 공동체라는 개념에서 사람들이 엮인 게 아니라, 우뚝 선 개인들이 서로에게 전파를 보내듯 연결돼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일종의 마을 커뮤니티 같은 모습을 형성하던 온라인 '카페'와는 결을 달리한다. SNS는 개개인의 계정들이 엮인 네트워크 자체일 뿐, 특정 공동체가 아니다.

한동안 우리 시대의 화두는 '개인주의'였다. 워낙 집단주의가 공고한 한국 사회였다 보니, 그에 대한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너무 엄격하고, 그 가운데 나타나는 상명하복, 수직적 폭력, 갑질, 서로에 대한 참견 같은 문제들이 모두 집단주의의 문제로 지목되었다. 그 결과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에는 급격하게 개인주의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개인주의가 너무 확대된 나머지 '파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서로가 참견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을 넘어, 자기밖에 남지 않은 현실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네트워크는 종래의 이웃공동체를 대체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과거의 집단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인간은 서로 연결돼야 한다. 그리고 이 연결에도 부정적인 점과 긍정적인 점이 있다.

대표적인 단점은 '절망이 없는 인스타그램'으로 대변되는 전시와 비교, 시기와 질투,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같은 것이다. 느슨하게 연결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각자의 삶을 전시하면서, '멀리 있는 것들'이 주는 소외감이 심화된다. 그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모두 화려하고 완벽해 보인다. 네트워크적 관계, 느슨한 연결의 무서움은 먼 것이 주는 괴로움이다.

반대로 네트워크가 주는 결정적인 장점도 있다. 서로를 원거리에서 시기나 박탈감의 관점이 아니라 호의와 선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는 의외로 매우 단단한 관계로 나아간다. 가까운 관계는 쉽게 토라질 수 있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불편한 것이 있다. 서로 맞지 않는 습관이나 말투, 무심한 표정은 가까울수록 치명적이다. 그러나 멀리서 호의를 건네는 관계는 그런 위험이 적다.

이 먼 관계의 장점은 서로가 보내는 호의 안에서 단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멀기 때문에 편하고 덜 부담스러우며 언제 찾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지만, 서로를 오래 지켜볼 수 있다. 서로가 유사한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각자 의미 있는 삶과 세상을 지향할 수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오히려 간헐적으로 도와주는 선의의 연대를 만들 수 있다.

네트워크 만들기는 그런 점에서 느슨한 커뮤니티 만들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커뮤니티는 서로를 지지하면서, 품앗이하듯이 서로를 도울 수 있다. 가깝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 속에서 접점만을 교류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즘 거의 모든 산업 영역은 네트워크 만들기에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구독자나 팬덤을 구축해 기업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그러나 그런 인위적이고 상업적인 의미에서의 네트워크보다, 더 필요한 건 개개인들이 만들어 나가는 마음의 연결과 연대일 것이다. 이 먼 네트워크, 그러나 어쩌면 더 강고한 선의 그리고 더 단단한 연결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이웃의 시대 다음에 온 파편화의 시대 그리고 그다음에 오는 시대가 바로 네트워크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 연결이 진정한 연결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상상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