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훈의 아그리젠토] 예고된 샤인머스캣 참사

정혁훈 2022. 11.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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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혁훈의 아그리젠토 ◆

얼마 전 아이들이 샤인머스캣을 먹는데 껍질을 뱉어내기 바쁘더군요. 껍질째 먹는 포도가 맞나 싶었습니다. 맛도 예전만 못하다고 불평이 늘어졌습니다. '망고 포도'니 '황제 포도'니 하면서 과일계의 귀족 대접을 받던 그 샤인머스캣이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가격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가락도매시장 경매가는 작년보다 60~70% 낮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농민들도 불만이긴 마찬가지겠죠.

샤인머스캣의 품질 저하와 가격 하락에 대한 원인 찾기가 분주합니다. 품질이 예년만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다 익기도 전에 수확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올해는 유독 추석이 일러서 조기 출하한 물량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도매시장에서 갈수록 '초물(제철 초기에 수확한 물량)'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격이 떨어진 건 재배 면적이 급증한 탓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샤인머스캣 재배 면적은 현재 4000㏊(약 1210만평) 정도로 2016년 240㏊(약 72만6000평)와 비교해 6년 만에 16배 넘게 늘었습니다. 올해 국내 샤인머스캣 생산량은 작년보다 50% 늘어날 전망입니다.

그런데 가격 하락을 단순히 생산량 증가로 설명하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생산이 아무리 많아도 품질에 문제가 없고 수요만 받쳐준다면 가격은 지지되기 때문입니다. 캠벨 포도는 재배 면적이 1만㏊를 넘어도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품질 저하의 원인도 조기 출하만을 탓하기 어렵습니다. 조기 출하가 문제였다면 지금쯤은 품질이 정상화됐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 재배 농가들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적과(摘果), 즉 솎아내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샤인머스캣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박서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의 설명입니다. "샤인머스캣의 적정 수확량은 300평 기준 2000㎏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4000㎏ 이상을 수확하는 농가가 많습니다. 최근 몇 년간 가격이 워낙 좋다 보니 생산량을 늘리려 솎아내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거죠. 그러면 당도가 떨어지고 미숙 영향으로 껍질도 두꺼워집니다."

둘째 이유는 재배 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샤인머스캣은 고온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는 작물입니다. 여름철 강우를 피하기 위해 비가림막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농가가 샤인머스캣은 물을 덜 주어야 당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포도 알이 착색되기 시작하면 물을 충분히 주어야 오히려 광합성이 잘되면서 당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샤인머스캣 사태에 대한 책임이 농부들에게만 있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적과를 줄이는 건 농가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농가들의 그런 선택을 막으려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통시장에서 품질이 가격에 정확하게 반영된다면 농민들은 제값을 받기 위해 스스로 품질 개선에 더 힘을 쏟을 것입니다. 농민들의 선의에 기대려고 하기보다 농산물 유통시장 기능을 선진화하는 것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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