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경제경영서] 극장서3시간? 3분 요약 볼래요 콘텐츠도 가성비 따지는 Z세대

김슬기 2022. 11. 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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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예스24 선정 '11월의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현대지성 펴냄, 1만5500원

신인류에게 극장에서 영화 보기는 고역이다. Z세대는 2시간 동안 극장에 갇혀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문화에 익숙지 않다. 불 꺼진 극장에선 문자 메시지 확인이나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도 없다.

감상 문화 변화의 시작은 2019년 8월 넷플릭스에 추가된 재생 속도 선택 기능이었다. 0.5배부터 1.5배까지 5가지로 속도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람 속도는 과거보다 빨라지기 시작했다. 유튜브도 스크롤바를 통해 원하는 장면으로 바로 가거나, 빠른 속도로 관람하는 게 가능해진 지 오래다.

일본 '키네마 준보'의 잡지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아오야마가쿠인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콘텐츠 시청 습관을 조사했다가 학생 중 87.6%가 '빨리 감기' 시청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주목받은 이 책은 '가성비의 시대'가 콘텐츠 트렌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려준다. 빨리 감기 감상의 첫 번째 이유는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서다. 정액 요금으로 무제한 시청이 가능한 OTT 시대가 열리면서 콘텐츠 공급과잉 시대가 열렸다. '어벤져스' 세계관을 만나려면 20여 편의 영화를 봐야 하고 히트작은 시즌1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가성비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취미나 오락에서 쉽게 무언가를 얻거나 빠르게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멀리 돌아가는 것은 꺼린다. 방대한 시간을 들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만의 관점을 얻는 과정을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는 악이고, 가성비가 선인 시대다. 표현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말 대신,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말이 익숙해졌다. 식사에 비유하면 감상은 식사 자체를 즐기는 것이고, 소비는 영양 섭취가 목적이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재미있는 영화라도 2시간 동안 봤다면 시간 낭비를 했다는 후회가 더 컸을 것"이라거나 "효율적으로 보면 적은 시간으로도 친구와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옹호했다. 스토리를 중시한다는 감상자는 1회만 보통 속도로 보고 이후는 1.5배속으로 봤다. 형편없는 작품은 '하차'하고, 1.5배속으로 보는 건 선별된 작품이라는 이도 있었다.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자체적으로 편집하면서 본다"는 답에서는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며 자란 '영상 네이티브' 세대의 특징도 보인다.

인기 작품의 트렌드 변화가 빠른 것도 영향을 준다. SNS의 발달로 정보 공유 속도는 빨라지고, 단톡방을 통한 친구들과 소통이 중요해진 세대에게 "그거 봤어?""꼭 봐"란 말의 힘은 세다. 소외되지 않으려면 영상 소비를 거를 수 없는 것이다. Z세대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 영화 내용을 사전에 알고 싶어 한다. 저자는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체험하지 못한 것'에 가치를 둔다면 Z세대는 '체험을 따라가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이들은 예상 못 한 일이나 반전을 심지어 스트레스로 받아들인다."

이런 변화에 저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낸다. 패스트푸드처럼 '배만 채우는' 콘텐츠의 시대를 개탄한다. 빨리 감기 감상자들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정보가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모두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비어 있는 풍경이나 소품 하나가 말을 하기도 하는 게 영상 작품의 묘미다. 감상에도 근육을 단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탄식한다. "추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몬드리안의 작품을 갑자기 접하게 된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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