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본 내 고양이의 MBTI

김영글 2022. 11. 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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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자기 반려묘의 MBTI를 측정한다면 INFJ가 나올 게 틀림없다고.

혹자들은 사이비 뇌과학이라며 MBTI의 유행을 비판한다.

후자의 가능성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기에, 나는 (믿지는 않지만) MBTI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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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오후] '짝이 되는 동무.' 반려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입니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짝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반려인들의 단상을 담았습니다.
녹두의 MBTI는 아무래도 ENTP인 것 같다. ⓒ김영글 제공

고양이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자기 반려묘의 MBTI를 측정한다면 INFJ가 나올 게 틀림없다고. 당시에는 무심코 웃어넘겼는데 이후에도 종종 그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 그런 분류가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어주리라 여기지 않는다. 혹자들은 사이비 뇌과학이라며 MBTI의 유행을 비판한다. 그러나 몇 개 되지도 않는 혈액형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했던 과거를 회상해보라. MBTI 정도면 비교적 구체적이고 섬세한 분류법인 셈이다. 어쩌면 과학적 근거나 신빙성 여부보다, 우리 시대가 MBTI에 빠져든 까닭이 더 흥미로운 주제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이해받고 싶어 할 뿐 아니라 타자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지니고 있는데,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뭐든 기꺼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화 게임은 타자를 임의로 규정하면서 무책임한 편견이나 손쉬운 위안을 양산할 수도 있지만, 시도는 허술하더라도 이해의 차원을 넓히고 존재와 관계에 대해 사유하는 계기를 줄 수도 있다. 후자의 가능성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기에, 나는 (믿지는 않지만) MBTI를 좋아한다.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달리 MBTI는 살아가는 동안 변할 수 있다. 후천적 요인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요다, 모래, 녹두, 세 고양이가 차례로 들어와 정착하는 동안 나는 나의 무지와 오해 때문에 뭔가를 그르칠까 봐 자주 두려워했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그리고 말 안 통하는 인간인 나에 맞추어, 계속해서 적응하고 변화해주었다. 물론 그들과 살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나였다. 계획성이라곤 없는 사람인데 어느 순간 고양이들 입맛에 맞는 사료를 찾겠다며 엑셀 표를 만들어 기호도를 단계별로 표시해 넣고 있었다.

다른 존재의 세계 속으로

자신의 전혀 다른 면을 발견하게 만드는 존재를 만나면 서로의 뇌는 변화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관계 맺는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변화하지 않고서는 진행될 수 없는 사건이다. MBTI가 참조한 심리유형론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두 존재가 만나는 일은 두 개의 화학물질이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남겼다. 존재는 화학작용 속에서 성장하고 갱신된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삶의 방식을 지닌 타 종과의 관계 맺음은 그러한 화학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장소가 아닐까?

나도 친구를 따라 한번 짐작해본다. 요다는 ISTJ, 모래는 ENFP, 녹두는 ENTP인 것 같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이걸 유추하려고 그들에 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는 사실이다. 행동과 습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경쟁 구도나 소소한 위기 상황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반응 등을 떠올리는 동안, 나는 또 한 걸음 깊이 발을 내디뎠다. 내가 사랑하는 세 고양이의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 속으로.

김영글(미술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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