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에도 꿋꿋이 평화를 일구는 보노보

정주원 2022. 11. 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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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핸드셰이크 버네사 우즈 지음, 김진원 옮김 디플롯 펴냄, 2만2000원

현 인류 호모사피엔스와 DNA 일치율이 98%를 넘는 영장류는 침팬지만이 아니다. 보노보도 있다. 1929년 발견됐을 때만 해도 침팬지의 아류로 취급됐다. 그러나 보노보는 수컷이 위계를 형성하고 폭력적 공격성이 두드러지는 침팬지와는 아주 다르다. 암컷들이 우위에 있고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한다. 수컷 보노보가 다른 보노보를 공격하거나 해코지하면 네다섯 마리 암컷 보노보가 달려들어 그를 응징한다. 시도 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도 이들만의 특징이다. 번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고 유대관계를 쌓기 위해 교미를 한다.

아프리카 콩고에서만 서식하는 야생 보노보의 성향을 이렇게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예리하게 전달하는 인간 관찰자가 있었던 덕분이다.

2010년 저자 버네사 우즈가 영어로 출간했던 에세이가 10여 년 만에 한국어로 번역됐다. 앞서 남편이자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함께 쓴 책 '개는 천재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등도 국내에 소개돼 인문학적·과학적 통찰을 품고 있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에세이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에 있는 보노보 보호구역을 배경으로 다층적으로 펼쳐진다. 이 구역의 주인인 보노보는 말할 것도 없고, 냉전 시기 32년간 지속된 모부투 독재 정권과 이후 벌어진 콩고 내전 이야기도 촘촘하게 얽혀 있다. 광활한 자연을 품은 보호구역이 실은 과거 모부투의 별장으로 쓰였던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미국·유럽을 비롯한 서구 국가가 다이아몬드 등 금광석 산지인 콩고를 어떻게 수탈했는지, 콩고의 독재 정권과 어떻게 손잡았는지도 기록한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1·2차 콩고 전쟁의 참혹한 잔상과 이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작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게 전한다. 사람뿐 아니라 보노보 같은 야생동물들도 피해를 본 것은 마찬가지다. 군인과 사냥꾼의 학살로 어미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보노보들이 이 보호구역에 모여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관찰자이자 주인공인 저자 버네사 우즈의 탐험·성장 서사와 맞물린다.

결혼 직후 콩고로 가 보노보를 만나게 된 것도 모두 남편 브라이언 헤어의 연구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고. 그러나 뛰어난 글쟁이이자 열정이 있는 우즈는 콩고에서 결코 주변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보노보가 전쟁을 벌이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순은 형용할 수 없이 아픈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가고 평화를 일구는 보노보에게서 오히려 인류의 미래를 본다. 그것은 인간이 보노보에게서 배워야 할 평화로운 세상이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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