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후… 강렬한 생명의 숨결을 그려내다

김슬기 2022. 11. 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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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 호세 팔라 개인전
코로나 걸려 석달간 혼수상태
재활 후 1년간 작품에만 몰두
열 살부터 거리서 그리기 시작
스트리트 아트를 회화에 접목
Synesthesia. 【사진 제공=가나아트】

호세 팔라(49·사진)는 2021년 2월 코로나19에 걸려 3개월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두 달을 병상에 누워 걷는 법과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조차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었다. 뉴욕 서울 도쿄를 오가며 바쁘게 활동하던 중 갑작스레 병마와 싸우게 된 그에게 의사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뒤 그는 작은 그림을 그리며 재활을 시작했다. 이후 1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 작업한 신작들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12월 4일까지 작품 23점을 전시하는 호세 팔라 개인전 'Breathing'이 열린다. 지난달 26일 만난 작가는 "병상에서 30㎏이 빠졌고 숨을 쉬지 않을 때 정신도 존재할 수 없음을 배웠다. 작가로서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다시 만났다. 이 강렬한 경험을 작업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회화, 조각, 영상, 아카이브까지 망라해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지난 20여 년에 걸친 작업의 모든 걸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팔라는 쿠바 출신으로 어린 시절 미국 마이애미로 이민을 간 뒤 작가로 뉴욕에서 27년을 살았다. 댄서 출신으로 스트리트아트, 그라피티, 캘리그래피를 회화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초대형 캔버스에 생명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담아내는 화려한 색채의 페인팅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장 1층에는 아카이빙 자료를 모았다. 2015년 그가 9·11 테러 이후 다시 지은 프리덤타워에 커미션 작업으로 그린 벽화 사진과 책으로 출간된 여러 작업을 만날 수 있다.

2층에선 본격적인 회화의 바다가 펼쳐진다. 강렬하고, 거대하다. 강인한 생명에의 의지가 그대로 묻어나 전시 제목처럼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팔라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잃으며 에너지의 상실을 경험했다. 기억의 상실과 생존의 과정을 색채를 통해 담아내려 했다"고 했다.

2층의 양쪽 전시장을 잇는 복도에는 병상에서 쓴 시를 적었다.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물감이 거칠게 흩뿌려진 화폭을 보며 그는 "플라스틱 튜브를 만들어 물감을 뿌리고, 건조 과정에서 손으로 다시 물감을 섞어버리는 작업을 했다. 많게는 10가지 색이 섞이고 덮이면서 계속 층이 만들어진다. 건조와 채색을 반복하느라 몇 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 작업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나아트 야외 공연장에 설치된 대형 조각은 뉴욕 하이라인에 설치됐던 공공 프로젝트의 일부로 거대한 크기가 시야를 압도한다. 작가는 열 살부터 거리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섰다. 아바나와 뉴욕 등에서 도시를 기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그에게 도시는 스승이자 작업실이었다. 여러 도시와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온 그에게 예술은 숨결처럼 자유롭게 흘러가고 변하는 것이다. "숨을 쉴 때 공기는 몸 안에서 여행하고 결국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병원에서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은 나에게 일종의 춤이고, 에너지이고, 감정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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