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 섬풍경 쥑이네 인생샷 각이네

서대현 2022. 11. 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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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동구 방어진 슬도
방어진 슬도 동굴샷. 슬도에 오면 누구나 비슷한 구도로 사진 찍기에 도전한다. 【사진 제공=울산 동구청】

어느새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시기도 그렇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어 사람이 붐비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방해받지 않고 쉬엄쉬엄 즐길 수 있는 여행지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울산 염포산에서 일산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제8코스. 이 코스의 백미로 불리는 방어진 슬도(瑟島)와 대왕암공원을 찾았다. 해파랑길 제8코스 중 슬도에서 대왕암공원까지 이어지는 해안 둘레길은 동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구간으로 유명하다. 둘레길 언덕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샤스타데이지(봄), 황화코스모스(가을), 유채꽃(늦겨울~봄)이 만개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슬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울산 동구에 있다. 면적은 축구장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주변은 관광지로 잘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울산 동구청이 어항, 섬, 해안 길이 어우러진 대표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명소 중 하나다.

슬도는 방어진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작은 바위섬이다. 무인 등대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슬도는 우리말로 하면 '거문고섬' 정도가 되겠다. 이 이름은 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동구 주민들은 파도와 바람이 슬도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여느 바위섬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슬도를 이루는 바위 때문이다. 슬도 바위는 현무암이 아닌데도 현무암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바닷물이 바위를 적시면 검은색으로 변해 제주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슬도 바위 구멍은 조개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돌에 구멍을 내는 석공조개 일종인 돌맛조개가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낸 흔적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바위 구멍이 공명을 일으키면서 슬도만의 독특한 소리를 낸다고 주민들은 믿는다.

슬도는 육지 속 섬이다. 과거 방어진 소년들은 육지에서 슬도까지 100여 m를 헤엄치며 어른스러움을 과시했지만 지금 슬도는 육지와 방파제로 연결돼 걸어서 갈 수 있다. 국보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를 형상화한 대형 고래 조형물, 방파제 낚시꾼, 방파제에 걸터앉아 무심히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명지 동구청 홍보계 주무관은 "도심 가까운 곳에 이런 섬이 있다는 것이 슬도의 매력"이라며 "올해 말까지 방문객은 20만명 정도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근 슬도는 '어떻게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무인 등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출과 일몰, 옛 모습을 간직한 슬도 옆 성끝마을의 골목길, 구멍 뚫린 이색적인 바위와 바다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다.

슬도를 배경으로 하는 사진 중에는 '동굴샷'이 유명하다. 동굴 너머 구멍 안에 등대와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하지만 슬도에는 동굴이 없다. 바위에 난 손바닥만 한 구멍 안에 카메라 앵글을 조절해 촬영한 것. 일종의 착시 효과다.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법 가파른 바위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위험이 따르지만 '인생 사진'을 위해서라면 위험을 무릅쓰는 열혈 사진가가 적지 않다.

슬도 소리체험관 옆 산책길은 대왕암공원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으로 한가롭고 게으른 걷기가 시작된다. 슬도에서 대왕암공원까지 길이는 1.6㎞로 성인 걸음으로 40분 정도 걸린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산책길 옆 황화코스모스 단지의 꽃이 모조리 뿌리 뽑힌 게 아쉬울 따름이다.

대왕암공원은 대왕암을 비롯해 남근바위, 탕건바위 등 바다 위로 솟아오른 기묘한 바위와 1만5000그루 해송 숲으로 유명하다. 해송 숲은 재선충병의 악재를 이겨내고 방문객에게 여전히 청명한 그늘과 바람을 제공한다.

대왕암공원에는 지난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완공되면서 또 다른 볼거리가 생겼다. 길이 300여 m인 이 출렁다리는 현대중공업 조선소와 동구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무료인 데다 바다 위 출렁다리라는 차별성 때문에 개장 5개월 만에 방문객이 100만명을 돌파하는 등 대왕암공원 인기 시설로 입지를 굳혔다. 다만 흔들림이 다소 심하고 일방통행이라 한 번 진입하면 되돌아올 수 없다. 공원에는 어린이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공원 입구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고, 실내 어린이 테마파크인 '대왕별아이누리'도 운영 중이다.

여유가 되면 슬도 인근 방어진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1950년대에 지은 목조 건물을 개조해 만든 동구 근대사를 기록한 작은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 '방어진 철공소'와 동해안 첫 방어진 방파제 착공식 사진, 고래잡이 대회 우승 상장 등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옆에는 100년이 넘는 목욕탕 '장수탕'이 있고,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을 개조한 건물에는 50년 넘은 전파상 등 오래된 점포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울산/서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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