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서관' 다니세요? 책 3000권 읽고 '장사의 신' 됐답니다

신익수 2022. 11. 18. 16: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그맨 겸 영화배우 겸 탤런트 겸 메밀국수와 돼지갈빗집 CEO 겸 베스트셀러 작가 겸 강사 고명환
메밀국숫집에 이어 돼지갈빗집으로 연이어 대박을 터뜨린 개그맨 고명환이 서빙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승환 기자>

"길어야 이틀입니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뼈 수백 군데가 부러졌다. 심장도 찢겨 나갔다. 그 시절 가장 잘나갔던 최수종·송일국 주연 드라마 '해신'의 핵심 조연. 탄탄대로였던 스타의 앞길. 모든 게 교통사고 한 방에 날아갔다. 다행히 회복은 된다. 기적이었다. 무료한 시간엔 책만 읽었다. 하루하루 쌓인 3000여 권의 내공. 월 1억원, 연 매출 12억원의 메밀국수 가게가 그렇게 탄생했다.

책에서 답을 찾은 스토리는 출간 한 달여 만에 10쇄를 찍는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장사의 신. 그 주인공은 놀랍게도 개그맨 고명환(50)이다.

기자를 보자마자 톡톡 튀는 인사말이 날아든다. "개그맨 겸 영화배우 겸 탤런트 겸 메밀국수와 돼지갈빗집 최고경영자(CEO)겸 베스트셀러 작가 겸 강사를 하고 있는 고명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역시다. 죽음의 문턱을 밟았고, 장사의 신으로 거듭났어도 개그 본능, 개그 DNA만은 그대로다.

―교통사고 얘기를 안 들을 수 없다. 시한부 판정까지 받으셨다고.

▷잊을 수가 없다. 2005년 2월이다. 50부작의 대작, 드라마 '해신' 18부를 찍고 전남 완도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운전하던 매니저가 깜빡 졸았다. 시속 190㎞로 앞 트럭 후미를 그대로 받았다. 뇌출혈에 뼈 수백 군데가 부러졌다. 심장도 찢겼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수술을 끝낸 의사가 말했다. "고명환 씨. 길어야 이틀입니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유언하시고, 신변 정리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놀랍게 회복이 된 거다. 주변에선 말한다. 지옥 같지 않았냐고.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진짜, 이 교통사고에 고맙다고.

▷▷고명환은 오히려 사고에 고마워한다. 사실 이날 교통사고는 많은 것을 앗아갔다. 지금도 후유증으로 한쪽 눈동자를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도 사고가 고맙다. 사고가 아니었으면 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이다. 독립적인 한 사건을 보는 방식은 손바닥 뒤집기다. 나쁜 쪽, 그림자를 보면 평생 지옥이 펼쳐진다. 반대로 밝은 면을 보면 그게 터닝포인트가 된다. 그는 사고 덕분에 책과 인연을 쌓았다. 독서력의 힘을 알게 된 것이다. 3000권의 독서로 통제력을 지닌 길을 찾았고, 지금 1초도 끌려다니지 않는, 능동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 독서에 빠졌다고 들었다.

▷인생에 남은 시간이 딱 이틀뿐이라면 어떨 것 같나. 교통사고 당시 집이 2채였다. 심지어 1채는 강남에 있었다. 죽음이 코앞인데, 돈이나 재산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딱 두 가지만 떠올랐다. 엄마에 대한 생각과 재수 시절. 가만히 생각해보니 순수하게 내 '의지'대로 산 시절만 떠오른 거였다. 재수는 늦게 시작했다. 8월부터 11월까지 딱 4개월. 진짜 1000% 내 의지로 공부를 했다. 독서실의 나무 냄새, 모나미 볼펜의 잉크 냄새까지 생생하다. 그때 알았다. 제대로 산 인생은 딱 4개월밖에 없었다는 걸. 초·중·고교 시절, 심지어 개그맨 생활까지 (순수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가 주입해놓은 대로 끌려간 거였다. '보너스로 살게 된 (교통사고 후의) 두 번째 삶은 의지대로 살아보자'고 이때 결심을 했다.

―의지대로 살기 위해 뭘 했나.

▷의지대로 사는 법이 궁금했다. 답을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부탁했다. 책 좀 사달라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렇게 3000권이 쌓였다. 마침내 답을 찾았다.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도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총쏘기 직전까지 묶여 있었다. 그 상황을 쓴 글이 있다. 나에게 3분이 주어진다면? 1분은 회상, 1분은 동료와 인사, 그리고 1분은 세상을 보다 죽겠다고. 지금의 나? 마지막 1분은 (정말이지, 내 의지로) 책을 보다 죽겠다.

▷▷기적적 생환. 연이은 장사 대박. 요즘도 고명환은 '운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운을 불러오는 기적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통제할 수 있는 기적과 통제할 수 없는 기적이다. 로또나 코인 폭등?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부의 기회를 잡는 운은 내 힘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통제 가능한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건 '통제할 수 있는 운'의 영역이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펼친다. 운을 불러올, 통제 가능한 기적의 영역을 조금이나마 넓히기 위해서다.

―책과 장사는 매칭이 되지 않는다. 개그를 다시 하지 왜 장사를 선택했나.

▷의지대로 살려면 '돈으로부터 독립'이 선행돼야 한다. 돈과 떨어져 살 수 있나. 없다.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필요한 만큼 버는 것, 다른 하나는 돈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철학을 장착하는 것이다. 물론 난 두 가지를 다 선택했다. 메밀국수와 돼지갈빗집 장사를 통해 필요한 만큼 돈벌기. 해냈다. 적당하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철학, 역시 장착했다. 명품 사고, 좋은 차 몰고 해외여행 가기? 난 싫다. 난 독서를 통한 정신적 쾌락이 훨씬 좋다. 지금도 아침 6시면 남산도서관에 간다. 주차장에서 또 한 번 놀란다. 고급차투성이다. 부자들이 왜 새벽에 도서관엘 오겠는가.

―실패는 없었나.

▷네 번을 말아먹었다. 당연히 독서에서 통찰력을 얻기 전이다. 인정한다. '감'으로 했으니. 2002년엔 목 좋다는 서울 청담동 씨네시티 옆에 감자탕집을 열었다가 망했다. 두 번째 실패가 리츠칼튼 호텔 건너편, 실내포차다. 개그 '와룡봉추' 파트너 문천식과의 동업이었다. 상호를 '니츠칼튼'으로 했다. '리츠칼튼 가서 한잔하자' 하면 전부 놀란다. 와, 선배 웬일이야? 로또 맞았어? 하며 따라온다. 그런데 그 장소가 그 호텔 건너편 '니츠칼튼' 포차인 거다. 이런 게 웃음 포인트고 장사 포인트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또 망했다. 새벽 장사였고, 천식이와 내가 소주 8병씩을 매일 마셨으니. 솔직히 살려고(?) 그만둔 거다.

세 번째 골프숍 내 식당업은 계약 문제가 꼬여 쫓겨났다. 네 번째가 닭사업이다. 몸짱이 되고 '고명환의 8주 식스팩 프로젝트'라는 책까지 냈을 때다. 성을 딴 '고닥(godak)' 네이밍도 하고 디자인, 포장지까지 만들어 출시만 하면 되는 순간, 후배 허경환이 '허닭'을 출시해버렸다. 미치는 줄 알았다. 개그계에 '의리'가 살아 있을 때다. '후배 따라한다, 등친다'는 소리 들을까 봐 조용히 '참한 닭'이라는 브랜드로 출범했다. 닭 브랜드가 '참한'이 뭔가. 지금 생각해도 아니다. 쫄딱 망했다.

▷▷실패를 통해 그는 '반대로'의 법칙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안다. 어떻게 하면 식당이 잘되는지 잘 안다. 그런데 반대로 해서 망한다. 재료를 아끼지 말고 팍팍 넣어줘야 하는데 반대로 한다. 친절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본인 편하려고 퉁명스러워진다. 청결도 귀찮아서 안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반대로 하라고. 좀 더 자고 싶다고? 반대로 일어나라. 이윤을 남기고 싶다고? 반대로 좋은 재료를 투척하라. 고객에게 화가 났다고? 반대로 더 친절하게 대하라. 이 정도면 완벽해 할 때, 한 번 더 연구하라. 저 놈 때문에 실패했다고 원망이 들 때 마찬가지다. 반대로 내 탓으로 돌리라고.

―'메밀꽃이 피었습니다'를 '월억' 신화로 만들었다. 흔한 게 국숫집인데. 뭐가 달랐나.

▷네 번을 말아먹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만 3000권을 읽었는데 내가 뭘 한 거지. 그래서 딱 반대로 갔다. '감(sense)을 빼고, 책이 시키는 대로만 해보자.' 손자병법과 세스 고딘의 마케팅 책을 골랐다. 지금 생각해도 '신의 한 수' 아니, '책의 한 수'다. 장사란 게 그렇다. 손님과의 전쟁이다. 전쟁 승산을 끌어올리는 5대 체크리스트가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도는 곧 철학이다. 누구나 그렇다. 장사를 할 때 '돈'을 먼저 떠올린다. 안 된다. 돈만 생각하면 백전백패다. 가치, 철학을 먼저 정해야 오래간다. 메밀꽃이 피었습니다의 철학은 이렇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자.' 이 철학과 가치를 손님들과 나누는 게 장사인 거다. 천은 하늘의 때다. 이때를 알기 위해 트렌드 책을 또 수십 권 팠다. 큰 축이 '지구온난화, 1인 가족, 고령화'였다. 온난화면 여름이 길어질 텐데. 잴 것 없었다. 무조건 여름장사. 영업시간(때)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 전으로 정했다. 이게 먹혔던 게 코로나19 팬데믹 때다. 다른 자영업자들이 영업시간 제한에 직격탄을 맞을 때, 오히려 매출이 30% 이상 늘었다. 영업제한 없는 시간대, 회전율 좋은 국수의 조합이었으니. 지(地)는 목이다. 목도 목이지만, '속도' 점검도 핵심이다. 그 가게를 지나는 사람의 속도, 차의 속도에 따라 업종이 달라져야 한다. 세 가지만 점검해도 답이 나왔다. 여름장사 메밀국수.

―세스 고딘의 책도 도움이 된 건가.

▷'보랏빛 소가 온다'는 책이다. 고딘이 아이들과 드라이브를 할 때다. 시골길에 접어들었을 때 아이들이 누런색 소떼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모퉁이 두 모퉁이, 계속 나오자 아이들이 곧 식상해했다. 수십 마리 떼가 장관을 이뤄도 감흥이 없었다.

고딘은 이때 느낀다. 한 마리만 보라색이라도 아이들이 열광할 텐데. 이런 거다. 영업비밀인데(웃음). 보랏빛 소를 가끔 선보인다. 테스트 차원이다. 반응이 좋으면, 고(go). 내년 초에 출범할 또 하나의 가게 아이템이 '보랏빛 소'에서 영감을 받은 거다. 소고기 차돌박이를 메밀국수와 함께 '연결'한 가게다. 가격도 1만원 아래로 묶었다. 상호? (진짜 말하면 안 되는데). 좋다. 매경 인터뷰라서 단독으로 공개한다. 메밀박이. 느낌이 탁 오지 않나.

▷▷그는 오늘도 남산도서관에 간다. 부자의 길을 열어준, 통찰력의 공간. 도서관을 그는 '돈서관'이라 부른다. 남산도서관은 입장권을 뽑는 구조다. 그는 이걸 또 모은다. 지금까지 수백 장이다. 이 입장권 한 장 한 장이 돈이다. 1000만원짜리 수표다. 고명환이 도서관을 찾는 날은 1년에 100일 남짓. 10억원 매출 식당 운영의 팁을 여기에서 찾았으니, 갈 때마다 한 번에 1000만원씩 번 셈이다. 그는 잘라 말한다. '돈서관'에 다니라고. 1000만원짜리 입장권을 뽑으라고.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개그맨 고명환은 …

MBC 공채 개그맨 출신.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든 뒤 책을 읽고 내공을 다졌다. 현재는 연 매출 12억원의 메밀국숫집 '메밀꽃이 피었습니다'와 하대승 '담양갈비' 고깃집을 운영하며 장사의 신으로 돌변해 소상공인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그의 스토리를 담은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출간 한 달여 만에 10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월 억' 장사의 신으로 돌아온 개그맨 고명환의 노하우는 매일경제 공식 유튜브 '매경5F' 돈터뷰 코너 인터뷰 영상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