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깨진 시대의 ‘연애 리얼리티쇼’[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2. 11. 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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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 지금은 너와 나…사랑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잖아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인연과 새로운 인연 사이에서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환승연애2>가 지난 10월 말 최종 커플을 발표하며 막을 내렸다. 티빙 제공

<환승연애2>가 끝났다. OTT 플랫폼 티빙(TIVING)에서 매주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쇼인 <환승연애>는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재결합 혹은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는 포맷으로 시즌1 공개 전부터 화제였다. 연애에서의 ‘환승’이란 대개 1 대 1 독점 관계에서 기존의 연애 관계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상대에게 호감을 느껴, 말 그대로 ‘갈아탄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별 형태 중 최악으로 꼽히기도 하는 이 ‘연애의 환승’을 미디어에서 밥상으로 차린다고?! 물론, 이미 헤어진 연인이라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환승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이러한 취지에 가까운 것은 오히려 카카오TV에서 제작하는 <체인지데이즈>라고 할 수 있다. 헤어질 위기에 처한 커플들이 나와서 연인을 서로 바꿔가며 데이트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환승연애>의 관전 포인트는 그런 자극적인 막장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과몰입’하는 것이 <환승연애>의 인기 비결이었다. 티빙 이용자의 90% 이상이 최종화를 보고, 단체관람 신청이 1만명을 넘을 만큼 큰 인기를 끈 <환승연애2>. 리얼리티쇼는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어떤 면을 재현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의 욕망을 반영하는 콘텐츠이다.

연애 리얼리티쇼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태초에 <사랑의 스튜디오>(MBC)가 있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했으며, 지상파 방송답게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청춘남녀의 ‘맞선’이 취지였다. 스튜디오 촬영 형식으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화살표를 보내서 서로 이어지면 커플이 된다. 그 이후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짝짓기 프로그램, 예능 비중이 더 높았던 연예인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 안의 커플 매칭이 이어졌다. 2011년 <짝>(SBS)은 연애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반인 출연자들이 함께 ‘합숙’을 하면서 짝을 찾는 동안 카메라는 숙소 여기저기에 설치된다. 생활을 함께하다 보니 스튜디오 촬영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장면과 감정, 소위 ‘날것’이 무대에 오른다. 여러 날을 함께 지내며 감정은 변화하고, 관계는 요동친다. 첫인상이 좋았다고 해서 끝까지 이어지리란 법이 없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짝>이 폐지된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쇼가 급부상한 것은 2017년 채널A의 <하트 시그널>이다. <짝>이 출연자 전원에게 같은 옷을 입히고 ‘1호’ ‘2호’라는 익명성을 부과하며 출연자의 적나라한 일상과 감정을 공개했다면, <하트 시그널>은 좀 더 ‘뽀샤시 필터’를 끼운 버전이다. <하트 시그널>은 외적으로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출연하고, 근사한 집에 모여 살며, 협찬된 제품을 소비했다. 선망과 몰입, ‘대리 심쿵’을 유발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하는 주요 요소이다. 종편과 케이블,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시청자가 세분화되고, 타기팅이 정교해지면서 연애 리얼리티쇼는 점점 더 다양해진다. 어떤 층의 시청자는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가? 또한 영상을 함께 보면서 코멘트하는 ‘패널’이 등장했다. 패널은 시청자의 반응을 대리하는 동시에, 시청자에게 해석과 평가를 제공하는 중계 역할도 한다.

과몰입 부른 ‘환승연애’ 인기에 ‘돌싱글즈’·‘체인지데이즈’ 등 ‘깨지고 붙는’ 서사 전면 부상
시작하는 설렘보다 미련·미안함… 헤어진 이후 감정·관계에 주목 연애 끝 ‘나’를 찾는 과정 그려

<하트 시그널>은 연애 리얼리티쇼와 ‘추리’를 결합하면서 시청자들을 적극적으로 쇼에 끌어들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편 찾기’처럼, 특정 커플을 ‘미는’ 파가 등장하며, 이러한 몰입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량과 이어진다. 이러한 부류의 추리 요소는 이후 많은 연애 리얼리티쇼에 적용된다. 상대의 목적이 돈인지 사랑인지 의심해야 했던 <러브캐쳐>(Mnet), 비밀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허용되는 <비밀남녀>(KBSjoy), <핑크라이>(디즈니플러스) 또한 끊임없이 시청자의 주의를 환기한다. <환승연애> 역시 누가 누구의 X(전 연인)인지 처음에는 밝히지 않은 채 시작한다. 전 연인들은 서로를 모르는 척한다. 시청자는 작은 눈빛과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어떨 때는 맞고 어떨 때는 틀리는 것 같다. 시청자는 누가 누구의 X일지 추리하고, 밝혀진 후에는 이전의 ‘떡밥’을 다시 보면서 표정과 말투의 숨겨진 함의를 발견하며 열광한다. 하나의 연애 리얼리티쇼 안에 다양한 재미가 포진하는 것이다.

한편, <환승연애>의 인기는 헤어진 이후를 다루는 최근의 연애 리얼리티쇼의 경향과 흐름을 같이한다. 재작년·작년부터 <우리 이혼했어요>(TV조선), <돌싱글즈>(MBN), <체인지데이즈>(카카오TV),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KBS2) 등의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며 일명 ‘깨붙’(깨지고 붙는)과 이별 이후의 서사가 연애 시장의 전면에 등장했다. 최근 <나는 Solo>(ENA플레이·SBS플러스)에서는 ‘돌싱 특집’을 진행하기도 했다. 연애 리얼리티쇼는 당대의 연애 각본과 문화적 틀을 기반으로 한다. ‘사랑이 끝난 후’를 다룬다는 것은 결국 ‘낭만적 연애’의 의미나 지위가 예전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연애 서사가 ‘우리는 마음이 통해서 오늘부터 1일입니다’만으로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으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는 뜻이다. 이전의 연애가 ‘시작하는 설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별 이후를 다룬 프로그램은 ‘연애가 끝난 후의 감정과 관계’가 중심이다. 특히 <환승연애>는 연애라는 특수한 관계 안에서 일시적으로 누구보다 친밀했던 두 사람이, 그 약속이 끝난 후에 다시 만난다. 헤어진 연인이란 사회적으로, 형식적으로 철저한 남이어야 하는 사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재회한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는 아직 얽혀 있다. 그것이 미련이든, 미안함이든, 고마움이든. 하지만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공통적이다(이는 출연자를 선정할 때부터 제작진이 신중하게 고려한 상황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재결합을 꿈꾸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환승연애>에서 새로운 연애의 설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때의 우리, 그리고 지금의 너와 나’를 마주하는 경험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자신의 과거와 관계를 돌아보고, ‘나도 그랬지’, ‘저렇게 오해가 발생하는구나’, ‘저럴 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를 공감하거나 배워간다. 결국 지난 연애를 거쳐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낭만적 사랑을 ‘개인화되어, 더 넓은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거점도 가지지 않는 어떤 개인적 서사 안에 타자를 삽입하는 이야기’로 정의한다. 연애가 기사와 귀부인, 혹은 일부 유학파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를 지나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로맨스는 이제 개인이 직접 써 내려가는 삶의 서사이고, 이를 통해 고유한 ‘나’를 확립해간다. <환승연애>에서 어떤 연인은 비로소 서로를 떠나보내고, 어떤 연인은 다시 만난다. 되돌아보고 깨닫고 확장하며. 이러한 경향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연애마저 ‘더 나은 나’를 위한 자기계발의 자장에 포섭되었다고 비판하는 것 또한 타당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이상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어떻게 사랑하고 관계 맺을 수 있을지를 새롭게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든스는 낭만적 사랑 외에 ‘합류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두 개인은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로 따로 또 같이 고군분투하며 삶을 조율해 나간다. 기든스는 이를 ‘합류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두 개인은 각기 다른 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두 개의 지류와 같다. 낭만적 사랑이 견고한 바위라면 합류적 사랑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아무 상관 없는 삶을 살아온 두 개인은 지류가 어느 합류점에서 만나 하나의 강물로 흘러가듯 어떤 계기로 만나 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간다. 강물은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시점에서 다시 갈라져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사랑하는 두 주체는 현재를 유대하고 공유하지만 미래의 시간은 열린 결말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낭만적 사랑을 탈각한 대신 현대 사회의 유동성을 수용한다.”(박소정, <연애정경: 우리 연애 이래도 괜찮을까?>, 북저널리즘, 2017, 38쪽)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유지태는 묻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22년의 연애 리얼리티쇼는 대답한다. “그 어떤 특별한 사랑이라도, 변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연애에 대한 이러한 산뜻하고 다소 건조해 보이는, 그러나 감정과 관계의 유동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변하거나 끝날 수 있기에, 상대를 소유하거나 지금을 붙잡아두려는 시도 대신 현재에 충실하며, ‘사귀는 방법’만큼이나 ‘잘 헤어지는 방법’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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