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일기처럼…다정한 일상들

김슬기 2022. 11.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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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김은정 개인전
일상과 풍경 그린 회화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연결
하나의 더 큰 이야기 직조

김은정(36)의 전시장에선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한다. ‘봄을 쫓아’에 숨어있는 검은 고양이와 벌새는 ‘겨울 숲과 고양이 셋’ ‘한강, 벌새’에 나란히 등장한다. ‘구름 산 파도’의 누워있는 여인의 오른쪽 벽에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대작인 ‘구름의 모서리’가 숨어있다. ‘노랑’의 책 읽는 여인은 튀니지 여행에서 목격한 인상적 풍경을 그림으로 옮긴 ‘읽는 사람’ 속 여인과 똑 닮았다.

‘흰 눈 내린’에는 나무를 덮은 흰 눈 사이로 백로가 숨어있다. 그림에 숨은 도예 작품이 캔버스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아홉 개의 눈’과 ‘여름, 봄’에 숨어있는 해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떠오르게 만든다. 마치 끝말잇기처럼 그림 속 소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하나의 더 큰 이야기를 만든다.

학고재 신관에서 김은정의 개인전이 12월 10일까지 열린다. 2021년 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선보인 ‘가장 희미한 해’의 연장선상에서 마련한 전시다. 판화를 전공하고 출판과 디자인 등 여러 작업을 해온 작가는 7점의 도자와 42점의 회화를 이번에 선보였다. 개막일인 10일 만난 작가는 “팬데믹 이후로 어떤 무해한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사람, 동물, 환경 이런 것들이 다 연관되어 있고 미세하게 얽혀 있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매일의 날씨와 일상적 경험을 소재 삼아 작업한다. 전시 제목 ‘매일매일 ( )’에 붙인 빈 괄호는 일상의 우연성을 상징한다. 자꾸만 어긋나는 일기예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매일의 의미를 비워 둔 공백으로 표현했다.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일상이 살아 숨쉬는 화폭으로 재탄생했다.

팬데믹 이후 처음 떠난 해외 여행에선 그림 소재를 잔뜩 가지고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본 구름들은 5.8m 폭의 대작 ‘구름의 모서리’ 속에 그대로 들어갔다. 호수에 비친 몽글몽글한 구름들은 빙하 같기도, 솜사탕 같기도 하다. 작가는 “구름과 햇빛을 보며 서로 연결된 커다란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타국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전 지구적 규모의 전염병에 대해서도 다시금 떠올려 봤다. 세상 속 모든 존재는 마치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것처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라고 말했다.

마스크팩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색채와는 대비된다. “인간관계야 말로 정말 가까운 환경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비언어적 의미가 담긴 어떤 숨길 수 없는 표정을 그리고 싶어 매일 하나씩 드로잉을 해봤다. 그 속엔 저도 있고, 제가 만난 이들도 있다.”

그렇게 사람의 표정도 풍경이 된다. 계절감(季節感)이 물씬 느껴지는 김은정의 그림 속 동물과 사람과 자연이 만드는 표정들을 보면서, 재난이 사라진 일상을 다시 꿈꾸게 된다. 곧 다정한 일상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흰 눈 내린 [사진 제공=학고재]
구름 산 파도 [사진 제공=학고재]
읽는 사람 [사진 제공=학고재]
김은정 작가 [사진 제공=학고재]
‘구름의 모서리’ 앞에 앉은 김은정 작가 [사진 제공=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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