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3년 만에 정규앨범, 긴 여행을 마친 기분" [일문일답]

지민경 2022. 11. 1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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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지민경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이 새 앨범 리스너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루시드폴은 지난 17일 열 번째 정규 앨범 ‘목소리와 기타’를 발매했다.

루시드폴의 신보 ‘목소리와 기타’는 지난 2019년 발표한 정규 9집 ‘너와 나’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정규 앨범으로, 루시드폴만의 섬세한 목소리와 따스한 질감의 기타 사운드로만 채워진 음악으로 호평 받고 있다.

이번 신보에는 타이틀곡 ‘사피엔스’를 비롯해 ‘한 줌의 노래’, ‘진술서’, ‘섬고양이’, ‘용서해 주오’, ‘홍옥’, ‘알바트로스’, ‘달맞이꽃’까지 루시드폴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로 이뤄진 총 8트랙이 수록됐다.

특히 ‘목소리와 기타’는 ‘소리’의 본질에 집중하며 ‘가요계의 음유시인’ 수식어에 걸맞은 서정적인 어법과 마음을 울리는 노랫말로 음악팬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에 한층 깊어진 감성과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담은 신보 ‘목소리와 기타’로 돌아온 루시드폴이 새 앨범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직접 전했다.

이하 루시드폴 일문일답 전문.

Q. 3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 발매한 소감은?

A.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2019년 정규 9집 ‘너와 나’를 내고 나서 시작한 여행 같기도, 2001년 ‘루시드폴’로서 첫 앨범을 내면서 시작한 여행 같기도 하다. 심지어 처음 ‘기타’를 만나고 품에 안았던 꼬꼬마 어린 시절 시작한 여행 같기도 하다.

Q. 정규 10집 ‘목소리와 기타’는 어떤 앨범인가?

A. 저의 목소리 그리고 저의 오랜 동반자인 나일론 기타로만 연주하고 노래한 앨범이다. 다른 악기도, 동료도 없이 오직 저희 둘만 참여한 앨범이다.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연주한 곡은 그동안 여럿 있었는데 전 곡을 이렇게 채운 앨범은 처음이다.

Q. 전곡이 ‘목소리’와 ‘기타’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A. 브라질 음악에서는 나일론 기타를 ‘violão’이라고 부른다. 보사노바, 삼바, 쇼루 등 음악을 연주할 때 이 violão은 빠질 수 없는 악기다. 브라질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고, 사랑하는 많은 브라질 가수들이 ‘목소리와 기타 (Voz e Violão)’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는데 그 음반들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러니 어쩌면 이 앨범은 저를 뮤지션으로 키워준 위대한 브라질 뮤지션들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갓 서른이 되었을 무렵, 브라질 가수 마시우 파라쿠 (Márcio Faraco)가 그의 목소리와 기타 (그리고 아주 약간의 퍼커션)만으로 만든 앨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앨범 속지에 적힌 글귀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데 ‘그동안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이런 큰 모험을 하기에 이르다 싶어 줄곧 거절해왔다’는 얘기였다. Márcio가 이 ‘목소리와 기타’ 앨범을 낸 것이 4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아, 나도 언젠가 이런 모험 같은 앨범을 낼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소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Márcio과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 비로소 소망이 이뤄졌다.

Q. 타이틀곡 ‘사피엔스’와 수록곡 소개를 부탁드린다.

A. 아주 재미없는, 약간은 기술적인 얘기를 먼저 드리자면, 이번 앨범에 매우 희한한 조율법을 사용했다. 베르디 튜닝(Verdi’s tuning)이라 불리는 튜닝법(A4=432 Hz)을 사용했는데 스탠더드 튜닝(A4=440Hz)에 비해 음을 낮게 튜닝했고, 그래서 노래들이 훨씬 느긋하고 온화한 느낌으로 느껴지면 좋겠다. (절대 음감이 있는 분들에게는 어딘가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기타 연주 역시 대부분 변칙 튜닝을 사용했다. ‘사피엔스’의 경우 (Eb-Gb-Db-Gb-Bb-Db)으로 줄을 맞췄는데, 보통은 E-A-D-G-B-E로 기타 줄을 맞춘다. 곡마다 조금씩 다른 튜닝법으로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지금 따져 보니 모두 7가지의 다른 튜닝법을 사용했다.

‘목소리와 기타’에는 모두 8 곡이 수록되어 있다. 가끔 저는 너무 흔해서 있는지 없는지조차 잊고 사는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어 볼 때가 있다. ‘한 줌의 노래’에 나오는 ‘용기’, ‘희망’, ‘사랑’ 같은 단어도 그렇고, ‘어제’, ‘오늘’, ‘아름답다’ 같은 단어도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하나 말을 꺼내고 입안에 머물게 하면, 정말 그 단어가 몸으로 퍼져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한 줌의 노래’는 그런 곡이다.

‘사피엔스’는 라틴어로 ‘현명하다’는 의미를 가졌다. 그러니 호모 사피엔스라면 ‘현명한 인류’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우리 인류는 과연 ‘현명’한 존재들인가’라는 의문을 언제나 가지곤 한다.

‘홍옥’은 오래된 사과 품종이다. 요즘 나오는 사과에 비하면 아주 작다. 어릴 적에는 홍옥 같은 ‘새콤달콤’한 사과가 많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서 가을이 오면 항상 어렵게 홍옥을 구해 먹는데 그 빨갛고 앙증맞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저도 모르게 ‘아, 가을이 왔네’ 하고 느낀다. 과일 농부가 된 지금, 제가 맛있고 풍성하다 느끼는 귤 맛을 어떤 사람들은 그저 ‘시다’며 싫어할 때가 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마냥 달지는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참맛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맛이 ‘당도’라는 수치 하나로 평가되는 건 서글픈 일이다.

‘알바트로스’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의 바다 그리고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 (Chris Jordan)의 ‘알바트로스’가 큰 모티브가 되어 만든 곡이다. 그러고 보니, ‘섬고양이’, ‘달맞이꽃’, ‘알바트로스’, 이 세 곡은 모두 제가 바닷가에 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가사라는 생각이 든다.

Q. 타이틀곡 ‘사피엔스’와 ‘한 줌의 노래’, ‘알바트로스’는 지난 5월 디지털 싱글로 선공개한 곡이다. 이 세 곡을 먼저 공개한 이유가 있는지?

A. ‘찬찬히 들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거의 모든 음악이 싱글 혹은 EP 단위로 나오고 매일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음원’이 쏟아지는 시대라, 듣는 분들이 행여 소화불량에 걸리실까... 한 음반을 나눠서 들려드리고 싶었다.

Q. 앨범 준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앨범 준비 과정에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언제나 앨범 작업은 제 수명을 갉아먹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유독 힘들었던 건, 어디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섬고양이’의 심정이었다고 할까.) 기타 소리는 목소리에만 의지해야 하고, 목소리는 기타 소리에만 의지할 수 있을 뿐, 숨을 곳도 없고 숨겨줄 곳도 없고, 대신 불러줄 사람도, 대신 공간을 채워줄 다른 악기도 없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곡을 고르고 추려내는 것 역시 어려웠다. 아무런 메이크업도 없이 목소리와 기타의 생얼만으로 설득력 있고 완성도 있는 곡이 되어야 했다. 백여 개가 넘는 스케치 파일들, 몇십 곡의 조각 곡들을 정리하고 추려서, 가사까지 만들어낸 완성곡이 15곡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겨우 8곡만 앨범에 담겼다.

Q. ‘가요계 음유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특유의 섬세한 가사말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가사를 쓸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는, 무려 ‘모든 곡’의 가사다. ‘노래’는 참 신비한 존재다. 꽤 많은 노래를 만들어왔지만 저는 아직도 어떻게 노래가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제 안에 고여 있는 많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가 어떤 찰나 혹은 우연 혹은 필연으로 만나게 되고 조금씩 조금씩 ‘노래’라는 형태를 띠다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태어나는데 그런 노래를 만든 저조차도 그 과정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신비롭다.

Q. 이번 앨범을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출시했다는 점도 특별하다. 일반적인 CD가 아닌 LP와 카세트테이프 발매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A. 제가 얼마 전에 SNS에 올렸던 글로 대신할까 한다.

“저는 많은 분이 여러 방식으로 이 앨범을 '감각'하면 좋겠다 바랐습니다. 스트리밍은 물론이지만, 쨍한 24bit/96kHz 고음질 디지털로도, 짙고 단단한 바이닐로도, 로-파이한 카세트테이프로도 제 음반을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망했습니다. 이런 까다로운 요구를 모두 떠안아준 안테나 여러분께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다만 CD를 기다린 분들께 무척 죄송합니다. 그저 LP와 테이프에 들어있는 고음질 음원으로 아쉬움을 달래주십사 청해봅니다.”

Q. 오는 12월 2~4일 10집 발매 공연도 앞두고 있다. 오랜만에 단독 콘서트라 감회가 새로운 것 같은데, 어떤 무대를 볼 수 있는지 간단하게 스포일러를 하자면?

A.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공연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유난히 외로웠던 이번 앨범 작업을 마친 마당에, ‘공연장에서라도 어디 기댈 곳은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른 연주자 두 분을 모시게 되었다. 피아니스트이자 마에스트로 (저는 그를 항상 이렇게 부른다) 조윤성 씨 그리고 퍼커셔니스트 파코 드 진 이렇게 두 분이 저와 함께 무대에 선다. 블랙박스 공연장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연주하게 될 거고 그런 저희 뒤를 여러 관객분들이 감싸주시는 구조의 무대가 되겠다. 3 년 동안 오로지 혼자 노래하던 방에서 벗어나서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연주에도 기대어보고 관객들과 함께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그런 공연이 되면 좋겠다. ‘함께’라는 것. 그것만큼 요즘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Q. 앨범을 기다려준 팬분들에게 전하는 한마디.

A.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만들었다. 저의 노래가 듣는 분들께 그 어떤 작은 의미라도 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mk3244@osen.co.kr

[사진]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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