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참사 그날, 긴박하던 ‘현장상황실’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 사진은 왜 올라왔나

김명지 기자 2022. 11. 1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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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가 있던 지난달 29일 새벽 1시. 소방청과 보건복지부의 구조활동 관계자들이 현장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개설한 카카오톡 단톡방에 현장 사망자 이송 방법을 놓고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소방청 측은 ‘망자(현장 사망자) 포함 40명을 순천향병원으로 이송한다’는 메시지를, 복지부 산하 중앙응급의료상황팀은 ‘이러지 마세요’라는 다른 입장의 메시지를 보내며 양측 문자가 대화방에 빠르게 쌓였다. 이 단톡방은 사실상 서로 다른 기관에서 파견된 대응인원의 현장상황실 역할을 했다.

응급 매뉴얼에서는 다수의 환자가 발생하면 긴급, 응급, 비응급, 지연(사망)으로 중증도를 분류하고, 긴급 환자부터 가까운 병원으로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때는 이런 판별 없이 현장 사망자들까지 모두 가까운 병원에 몰려 응급실이 과부하 상태에 빠졌다. 급기야 새벽 1시 47분쯤에는 의료팀에서 ‘저희가 안할 거다’ ‘산 사람부터 병원 보냅시다 제발’ 이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제공

그런데 1시 48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고 뒷짐을 진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복지부 장관님 나오셔서 현 상황 브리핑 받고 계십니다’는 글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사고 현장에서 사상자들이 응급실로 한꺼번에 이송돼 응급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 이송방법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함께 논의해 내려야하는 상황판에 난데없이 장관 사진과 함께 동선이 일일이 올라온 것이다. 조 장관은 그런 와중에 노란색 민방위복을 녹색 민방위복으로 갈아 입기도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노란색 옷을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었다./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이날 상황실 단톡방에서 ‘장관이 도착했다’고 사진이 올라온 것은 조 장관이 유일하다. ‘어째서 복지부 장관 도착한 것만 단톡방에 공지했느냐’라고 묻자, ‘응급의료는 병원의 영역이고, 의료계는 복지부 관할이라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단톡방에 포함돼 있던 소방대는 10시 42분 도착해 지휘가 이뤄지고 있던 터였다.

그날 조 장관은 주무부처 장관 중에서 가장 늦게 도착했다. ‘늑장 대응’으로 질타를 받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0시 45분 도착) 보다도 55분 늦었다. 조 장관이 단톡방에 사진으로 등장했지만, 정작 그 방에서 지시를 내리거나, 꼬인 문제를 풀어낸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 초동 대응 부실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런 정황을 근거로 ‘복지부 장관도 잘한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복지부 사무관들은 단톡방에 조 장관의 사진이 올라온 걸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며 실소를 터뜨렸다. 얼마 전 조 장관의 ‘텔레그램’ 메시지 사진도 논란이 됐다. 조 장관이 복지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인물로부터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국회에서 보고 있던 장면이 사진으로 찍혔다. 그 메시지에는 이태원 참사 대응과 차세대 비상대응본부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로 힘들어하고 있으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장에서 만난 복지부의 사무관들은 지쳐 있었다. 한 사무관은 “한국에서는 공무원들은 무조건 미친듯이 갈려야만 칭찬해주는 잘못된 문화가 있다”라며 “인간다운 삶이 사라졌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젊은 공무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단순히 갈아 넣는 문화가 아니었다. 한 사무관은 “아랫사람을 갈아넣고, 거기 편승해 본인 치적을 쌓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라고 자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복지부 공무원들의 ‘장관 떠받들기’과 ‘갈아넣기 문화’가 업계 화풀이로 대물림된다는 데 있다. 이태원 참사 단톡방에서도 화풀이가 그대로 나타났다. 중앙응급의료상황팀(복지부)은 위기 상황에서 “이런 식이면 우리 다 철수한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의료계 사람들은 복지부의 ‘갈아넣기’에 진절머리를 쳤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국민건강보험을 주축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의료수가를 좌지우지하는 복지부가 ‘갑중(中)갑’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

산업계에서는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달리 복지부와 프로젝트를 하면 ‘군림하려고 한다’는 반응이다. 산업계는 예산을 받을 것도, 지원을 받을 일도 없이 협조를 구하는데, 자신들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억누르려고 한다고 불만을 표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시대가 아닌데, 복지부는 유독 자기들이 모든 걸 컨트롤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오죽하면 국회의 보좌관들도 “복지부에서 자료 하나 받으려면, 과장급에서조차 결정이 안난다”라며 “누가 결재권을 틀어쥐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통제와 지휘가 나쁜 게 아니다. 적절한 통제는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작정 통제만 하려는 경우다. 그러면 배가 산으로 간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조 장관에게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장관 권한과 책임으로 어떤 일을 했느냐’는 질의였다. 조 장관은 이 질문에 “매뉴얼에 보면 현장에서 장관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했다. 리더는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키는 일만 하려고 한다면, 리더에서 내려와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뉴얼을 만들고 책임을 지고 이끄는 게 리더가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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