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나무 오르려 한 사육곰…‘곰숲’이 본능 일깨울까

김지숙 2022. 11. 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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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르포ㅣ화천 사육곰 방사장 나가던 날
처음 철창 밖으로 나온 12마리
매력쟁이 ‘미자르’ 세상 떠나
“고령의 곰들 남은 시간 많지 않아”
지난 13일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서 반달가슴곰 ‘우투리’가 방사장에 나와 간식을 즐기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지난해 6월 이 농장에서 키우던 10여 마리 곰들을 위한 보금자리(생크추어리) 건립을 발표하고 곰들을 돌보고 있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지난 13일 일요일을 맞은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는 초겨울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각 사육장 안 12마리의 곰들은 각자의 일과에 몰두해 있었다.

‘유일’이는 내실에 매달린 도구에 든 사료와 간식을 탐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물을 좋아하는 ‘어푸’는 제 이름처름 굳이 좁은 급수대에 들어앉아 있었다. 지리산에 전해내려오는 영웅 설화에서 이름을 따온 ‘우투리’는 해먹 위에 올라가 늘어져 있었다.

큰곰자리 별로 돌아간 곰

“정형행동이 많이 줄었어요. 외양도 많이 정돈되고 예뻐졌죠? 벌써 겨울털 준비도 마친 것 같아요.” 평일엔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는 방상우 활동가의 말처럼 지난해보다 곰들은 영양상태도 좋아 보였고, 불안정한 기색도 줄어 있었다.

눈에 띄는 더 큰 변화는 새로운 시설이 마련된 것이었다. 화천 농장의 곰들을 보살피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최근 곰들을 위한 방사장인 ‘곰숲’을 완공했다.

지난 13일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서 지내고 있는 곰 ‘유일’이가 간식을 먹기 위해 도구를 흔들고 있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이들 단체는 애초 지난해 6월 곰들을 돌보기 시작하며 올해 안에 야생동물 보금자리(생크추어리)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정됐던 부지 계약이 어긋나며 보금자리 건립은 계속 연기 중이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는 “올해 안에 부지를 선정하고 내년에는 첫 삽을 뜨는 것이 현재 목표다. 정부에서 부지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이웃 나라의 생크추어리는 모두 정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단체가 설립, 운영한다”고 말했다. 실제 2000~2006년 지어진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곰 생크추어리는 정부가 무상 제공한 국립공원 부지에 지어졌다.

지난 8일 새벽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곰 ‘미자르’. 활동가들은 미자르가 개성이 뚜렷한 곰이었다고 했다.  카라,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활동가들의 마음이 더 급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불과 일주일 전인 11월8일 새벽 곰 ‘미자르’가 세상을 떠났다. 건강에 전혀 이상신호가 없던 미자르는 6일 쓰러진 뒤 40여 시간 만에 사망했다. 정부의 반달가슴곰 종 복원사업에 참가했던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처지에 힘썼지만, 미자르는 ‘큰곰자리’라는 이름 뜻처럼 별이 되었다.

‘곰숲’이 왜 필요할까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아직 미자르의 빈 자리를 체감하고 있었다. “매력쟁이라고 할까요.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같은 매력이 있는 곰이었어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김민재 활동가는 지난 7월 초부터 사육장 현장에 상주하며 곰들을 돌보고 있다.

사육곰들의 채혈, 몸무게 측정, 방사장 이동, 합사 등을 트레이닝 하고 있는 이순영 트레이너도 ‘최애 곰’을 잃었다. 그는 미자르를 호기심 많고 엉뚱한 곰이었다고 추억했다. “훈련을 아주 잘 따라왔어요.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던 거예요.” 화천의 곰들은 15~20살에 이르는 고령이다. 대부분 2000년대 중반부터 철창 안에서 살아왔다.

지난 8일 새벽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곰 ‘미자르’. 미자르는 죽기 전 곰숲에 여러 번 나와 낙엽과 흙을 즐겼다.  카라,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보금자리가 완공되기 전 곰숲을 만든 것도 곰들에겐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곰숲은 위 아래로 나뉜 사육장 사이의 부지 100여 평을 활용해 조성됐다. 카라 고현선 활동가는 “관절이 안 좋은 곰들의 재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곰숲으로 이어졌다. 평생을 시멘트 바닥에서만 생활했으니 흙을 밟으며 운동하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야생동물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시설 기준이 높았다. 곰들이 나무를 타고 넘지 못하도록 모두 가지치지를 한 뒤 방사장 울타리에 전책(전기가 통하는 철책)을 둘러 설치했고, 사방에서 곰들의 움직임이 관찰 가능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를 달았다. 곰들은 언제든 호루라기와 종 소리를 들으면 사육장 복도나 방사장(곰숲)에서 즉시 내실로 들어오도록 트레이닝 받고 있다.

아직 어색하지만…‘보물찾기’ 맛나네

곰숲에 대한 곰들의 반응은 어떨까. 13일 두 마리의 곰이 차례로 곰숲으로 나왔다. 수십 년간 철창 사이로 내다본 앞마당에 나오는 것이니 꽤 반길 거라 생각했지만, ‘우투리’는 조심스러웠다. 내실과 복도, 방사장을 잇는 철문이 열려도 바로 이동하지 않고 걸음마다 주저하고 있었다. 이순영 트레이너가 땅콩과 밤으로 우투리를 곰숲으로 유인했다.

지난 13일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 지어진 방사장 ‘곰숲’에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들이 곰들을 위한 먹이를 곳곳에 숨기고 있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천천히 곰숲으로 걸어나온 우투리는 곳곳에 숨겨진 먹이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사전에 곰이 공간을 탐색할 수 있도록 방사장 곳곳 나무 틈, 바위 아래, 돌 무더기 안에 당근, 밤, 땅콩, 꿀 등을 보물찾기처럼 숨겨뒀다.

멈칫거리는 듯 보였던 우투리는 일단 간식을 찾아 먹기 시작하자 방사장 중앙에 걸어둔 간식 포대, 나무 틈을 양발로 파헤쳤다. 나무토막에 꺼내기 어렵게 숨겨뒀던 먹이도 쉽게 끄집어냈다. “와, 금방 찾네요.” 방상우 활동가가 즐거운 탄식을 내뱉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접근할 것 같지 않던 수영장에도 발을 넣어보고, 두 발로 서서 나무 높은 곳까지 손을 뻗기도 했다.

사육곰 ‘우투리’는 이날 12마리 곰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나무에 오르려는 시도를 해보였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사육곰 ‘우투리’는 이날 12마리 곰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나무에 오르려는 시도를 해보였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나무에 오르려고 한 행동은 12마리의 곰들 중 우투리가 이날 처음 보여준 것이었다. “야생 반달곰은 나무 타기 선수예요. 사육곰들은 그런 경험이 태어날 때부터 없다보니 나무를 보더라도 오를 수가 없는 거죠.” 이순영 트레이너와 활동가들은 사육곰들이 곰숲에서 ‘곰 다운 행동’을 되찾길 바란다.

“곰숲 통해 보금자리 상상해봤으면”

우투리가 곰숲에 반응을 보인 것과 달리, 두 번째로 등장한 ‘유식’이는 문 앞에서만 오가다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유식이는 곰들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귓바퀴의 털이 하얗게 새어있었다.

지난 13일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 지어진 방사장 ‘곰숲’에서 ‘우투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김지숙 기자 a href=\"mailto:suoop@hani.co.kr\"suoop@hani.co.kr/a

난생처음 흙을 밟고, 낙엽과 나무를 만져본 사육곰들에겐 자연이 낯선 환경인지도 모르겠다. 철창 속 곰들만 보아오던 사람들에게도 곰이 우리 밖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는 건 익숙치 않다. 곰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가기도 한다.

최태규 대표는 그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치듯” 후원금을 모으고 관련 부처들을 설득하고 있다. 그는 곰에게 필요한 환경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것, 나무에 오르는 것,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죠. 앞으로 만들어질 생크추어리에서 곰들이 생활할 모습을 곰숲을 통해 상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화천/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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