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보리밭 화가’ 이숙자

2022. 11. 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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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서정(抒情)과 힘찬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온 지향(芝鄕) 이숙자(80) 화백이 1989년 작품 '이브의 보리밭'을 선보였을 당시 한국 화단에선 도발로 받아들였다.

"여성은 자연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나는 누드를 꽃이나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생각한다. 무의식이겠지만, '벌거벗은 이브'는 내가 살아오면서 갈등했던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자화상이 아닐까도 싶다. 보리밭을 고뇌의 이브와 함께 그릴 수 있다는 기쁨에 열병을 앓듯 그려낸 그림으로,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새로운 내 작품 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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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한국적 서정(抒情)과 힘찬 생명력을 화폭에 담아온 지향(芝鄕) 이숙자(80) 화백이 1989년 작품 ‘이브의 보리밭’을 선보였을 당시 한국 화단에선 도발로 받아들였다. 음모(陰毛)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알몸의 여인이 보리밭에 누워,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바라보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화단 일각에선 “튀는 그림으로 돋보이려고 한다”고 수군거렸고, 어느 화가는 “저렇게 그리면 창피하지 않나” 하고 개탄도 했다. 이 화백 은사인 천경자 화백마저 “이런 건 좀 안 그렸으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이브의 보리밭’ 연작을 계속 내놓은 이 화백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성은 자연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나는 누드를 꽃이나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생각한다. 무의식이겠지만, ‘벌거벗은 이브’는 내가 살아오면서 갈등했던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자화상이 아닐까도 싶다. 보리밭을 고뇌의 이브와 함께 그릴 수 있다는 기쁨에 열병을 앓듯 그려낸 그림으로, ‘보리밭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새로운 내 작품 세계가 열렸다.”

이제 ‘이브의 보리밭’은 그의 예술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1967년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로 한국 채색화의 정통성을 이으며 발전시켜온 그가 1991년에 펴낸 에세이 저서의 제목으로도 삼았다. 그의 첫 보리밭 작품은 197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청맥(靑麥)’이다. 그해에 경기도 포천을 찾아간 길에 눈앞에 펼쳐진 보리밭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싶었다”고 한다. 아찔할 정도로 정서적 충격을 받았고, 그런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날이 6월 10일이었다는 것까지 지금도 여전히 기억한다. 우직하면서 눈이 선량한 소, 한글, 민족정기가 느껴지는 백두산 등 작품 소재를 다양화하면서도, 보리밭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그려온 배경도 달리 없다.

젊은 시절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의 의미로 한자(漢字) ‘세(世)’를 써서 집 안에 붙여 놓기도 했던 그는 결국 그 꿈을 실현한 셈이다. ‘보리밭’ 연작을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 40여 점으로 구성한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지난 10월 19일 개막했다. 오는 19일 끝난다. 머잖아 또 열렸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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