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방 후 노선변경, '일당백집사' 제작진의 선택은 옳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1. 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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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캐릭터가 볼매, 가슴 따뜻해지는 ‘일당백집사’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수목드라마 <일당백집사>는 어딘가 연출에 있어서 한껏 힘을 뺀 느낌이 역력하다. 초반에는 여러 이유로 사망하게 된 고인들의 서사가 중심이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려는 택시운전사와 자신을 버렸다 오해했던 그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 애타는 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나, 평생 고생만 시키다 갑자기 사망하게 된 남편이 아내를 위해 남겨 놓은 1억짜리 수표에 담긴 사랑 이야기, 또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그 누구보다 단란한 가족을 꾸리려 했으나 무단 침입한 강도에 의해 아내도 또 뱃속의 아이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아내의 진심을 듣고는 마음을 되돌린 남편이야기 등등...

<일당백집사>의 초반 4회까지의 서사는 죽음의 무게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무게감 때문에 심지어 주인공들인 망자와 접촉해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백동주(이혜리)나 무엇이든 대행해주는 일을 하는 '일당백'의 김태희(이준영)의 존재감이 가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4회가 끝나고 나서 <일당백집사>는 한 주 결방을 결정했다. 이태원 참사가 그 이유였다. 그 참사 앞에서 <일당백집사>는 내용을 '가다듬어'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다루고 장례식장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라서, 이러한 사회적 비극에 대해 무신경할 수가 없었던 터였을 게다.

한 주를 쉬고 돌아온 <일당백집사>는 5회부터 실제로 서사의 변화가 느껴졌다. 고인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지만, 이제 남녀 주인공들의 따뜻하고 달달하며 기분 좋아지는 멜로 서사가 본격화됐고, 그간 망자들의 이야기에 짓눌려 전면에 나오지 않던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들도 그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소 전형적인 구도지만 백동주와 김태희의 멜로 사이에 탁청하(한동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삼각 멜로의 긴장감을 만들었다. 김태희가 과거 의사였고 그 때 사귀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사건을 겪은 후 김태희는 죄책감에 병원을 떠났고 탁청하와도 결별했다. 중요한 건 삼각 멜로 구도로 서 있지만 드라마가 탁청하라는 인물을 전형적인 라이벌로 그리지 않고 멋진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쓰러진 노숙자를 지나치지 않고 긴급 구조하는 첫 등장에서부터가 그렇다.

이처럼 악역이 없는 드라마 <일당백집사>는 그래서인지 따뜻한 주변인물들이 많다. 백동주의 삼촌 미카엘 신부(오대환)와 김태희의 삼촌 빈센트(이규한)는 이 드라마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유쾌한 캐릭터들이다. 신부지만 백동주의 연애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밀어주는 미카엘이나, 어딘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갖고 있지만 늘 유쾌한 모습으로 김태희와 티격태격 친한 모습을 보여주는 빈센트나 모두 K삼촌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조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느껴지는 인물들이다.

이혼했지만 아픈 아이 때문에 자꾸 손을 벌리는 전 아내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백동주의 상사 임일섭(태인호)이나, 딸이 태어나는 날 아내를 잃은 후 그 빈자리를 채워주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따뜻한 아빠 백달식(박수영), 백동주의 친구로 임일섭에 한 눈에 반해 일방적인 직진을 시도하는 귀여운 인물 유소라(서혜원)나 구수한 사투리에 그늘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과거 김태희의 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의 아픈 상처를 숨기고 있는 순경 서해안(송덕호)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가 상처를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은 채 버텨내며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어떤 비등점을 넘어설 때 그걸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어 이들은 버텨낸다. 동생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며 끝내 눈물을 쏟아내는 김태희는 그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백동주가 있어 조금씩 외면해온 과거와 마주하기 시작한다.

본래 스토리가 그런 것이었겠지만 <일당백집사>는 망자들의 서사에서 지나치게 극적인 상황들을 담아내려 하지 않는 느낌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본래 이 드라마가 하려던 죽음을 통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전면에 꺼내놓고 있다. 드라마는 망자들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그 망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걱정과 위로의 말을 꺼내놓는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소박하고 소소한 것처럼 여겨져 왔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삶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 이 드라마는 바로 이러한 세상에 대한 따뜻한 태도만으로도 가슴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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