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공익적 가치 높아...선진국처럼 국가가 소득보존 나서야” [김병원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회장]

2022. 11. 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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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미래 고민하는 ‘참된 농사꾼’
소규모 농업·인구고령화 등 대전환 필요
스위스·日 등 농가소득 대부분 국가 지불
농가 현대화 과정 과제 국가 도움 필요
농가소득 목표액 설정 ‘물웅덩이’ 파는 격
스마트팜 등 혁신기술 도입농가 아직 미미
농가 안정소득 위해 유통구조 개선 필요
체력·기술·인내 필요한 귀농 기관도움 절실
‘100세 시대’ 농사 짓는 것이 자부심 되도록
국민 인식 전환·공감대 형성에 앞장 설것
김병원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회장이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환경 보전, 식량 자급 등 농업에 공익적 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때, 소득 보전 및 이로인한 첨단기술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전기차,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미래지향과 어울리는 것은 기술산업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화두에 오른 ‘에그플레이션(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은 새삼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 삶의 본질임을 일깨워 준다. 과거의 낡고 고루한 산업으로 치부돼왔던, 우리 농업의 미래는 그래서 더 꺼내두고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병원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 회장은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다. 농협중앙회 회장을 지낸 그는 스스로를 ‘농사꾼’이라 소개한다. 논과 밭에 대한 애정이 깊고, 재임시절 25만㎞를 뛰고 임직원 1만5000명을 만날 정도로 현장을 수시로 찾아 농민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구보다 농업 현장을 잘 이해하고 또 문제점도 꿰뚫고 있다 자부한다.

최근 만난 김 회장은 단박에 “우리 농업이 어렵다”로 말문을 열었다. 어려움은 숫자로 입증된다. 그는 “농민의 숫자가 줄고 있고, 숫자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빠르게 국가 예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농업 인구 비중은 4.7%로 5%에도 못미치고, 농업예산은 2.7%로 그보다 더 적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농업은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우리는 가구당 평균 소유 면적이 2㏊(헥타르)에 그칠 정도로 소규모 농업을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농업 인구도 고령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지만 강한 농업’이 돼 농촌에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어줘야 혁신도 이뤄진다”고 전했다.

터전을 이루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농가가 갑자기 수익을 올리긴 어렵다. 때문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국가가 인정해, 안정적 생활을 우선 도와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공익직불제에 따라 보조금이 나가고 있지만, 규모를 키워야 한다. 농가에서 얻어지는 소득에 정부가 지급하는 공익적 직불금을 통해 소농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 과정 속에서 단위농업 당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농협중앙회 회장 시절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과 농업 가치의 헌법 도입을 추진했었다. 김 회장은 “물을 저장하고 토양을 유지할 뿐더러 식품안전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실제 스위스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현실화해서 농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지급한다”고 했다.

그는 “스위스 뿐 아니라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일본 등도 농가의 공익적 가치를 반영해 국가가 직불금으로 보조한다”며 “농가가 현대화되어가는 과정의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도 농가 소득의 일정 부분을 국가가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농가소득 목표를 제시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김 회장은 농협중앙회 회장 임기 중 농가소득을 4700만원까지 올렸다. 그는 “우리나라는 농가소득 목표란 것이 없었다”면서 “농가소득 목표액 설정은 농촌에서 ‘웅덩이’를 파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논 농사 지을 때 웅덩이를 만드는 것은 물 부족 시 모를 심으려는 목적이나, 결국 그 자리에 붕어나 미꾸라지도 자라고 이로 인한 부수적 수입도 나온다”면서 “웅덩이를 파지 않으면 아무거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농가 소득도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더 수익을 올릴 수단이 무엇인지 제시조차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물론 스마트팜 등 이미 노동집약이 아닌 기술농업을 도입해 혁신을 이룬 농가도 있다. 그러나 아직 일부분에 그친 만큼, 우선 농업의 공익 가치를 인정해 직불금 확대로 농가 소득을 키우고 기술농업으로 진정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전환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적 수익을 얻기에 국내 농산물 가격 오르내림은 폭이 크다. 그는 “근본적 문제는 과잉생산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량 변화 등으로 피해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실제 데이터 분석 등이 들어가면 과잉 생산 등은 미리 방지할 수 있다”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조직화하면 가능한 일이다”고 전했다.

유통 경로에 대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농민이 농사를 지어 유통 시장에 나갈 때, 농민은 철저히 을이다. 정가매매가 그래서 필요하다”면서 “공판장 수수료는 가격과 무관하게 받기 때문에 정가매매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바로 이 때문에 농협중앙회 회장 당시 농산물 공판장 생방송을 시작했다고 했다. 공판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알면, 다음날 유통될 물량 준비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통해 사전에 비료나 사료 가격 등 비용 부담을 줄여 농가 소득을 올리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귀촌 인구는 50만명을 돌파했다. 다시 고향을 찾아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가 그만큼 많다. 김 회장은 “귀촌은 많으나 귀농은 적다”고 말한다. 농사짓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러나 귀농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 농수산대학교 입시경쟁률이 5대 1이다. 수요가 있다”면서 “귀농은 체력과 기술, 인내 등이 갖춰져야 하는 만큼, 관계 기관들이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적성이 맞는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생산부터 유통까지 당장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낙농국가인 네덜란드 등은 농과대학에서 학생들을 훈련해 농업 관련 기술자로 만들어준다”면서 “국내 농과대학은 농사꾼이 아닌 공무원을 만들고 있어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을 이끌어낼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농업은 평생 직업으로 남을 수 있다”는 그는 농업이야말로 100세 시대에 걸맞는 직업이라 전했다. 김 회장은 “현재 농민이 220만명인데 통계학자들은 10년 후 15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규모화가 가능하고 생산비가 덜어질 것이다. 소득이 높아지면 선진국처럼 농사 짓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인식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농촌이 가진 가치를 사회에 알리는 데 힘쓸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의 황금 들판은 돈으로 환산이 안된다. 초록 잔디나 깨끗한 개울 이런 것들은 농촌 공동체가 있어서 국민이 다 함께 누리는 것”이라며 “이 공익적 가치를 법에 반영해 농민의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앞장 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연진 기자

yj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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