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부 집들이] 서류전형에 면접…취업 경쟁이 아닙니다

한효희 2022. 11. 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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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부 집들이 - 연세산악회
한국산악회·대한산악연맹보다 나이 많은 산악 단체
연세산악회 깃발에는 연세대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산 위를 날고 있다.

경쟁률 4대 1, 취업 경쟁률이 아니다. 서류전형에 면접산행까지 통과해야 가입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 산악회 이야기다. 2014년 연세산악회 회사편찬위원회는 1928년 세브란스의전 등산부 설립이 보도된 동아일보 기사를 발견했다. 이를 기원으로 본다면 연세산악회는 한국산악회나 대한산악연맹보다 형님이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세산악회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31년 동아일보에는 연희전문학교 산악단이 한라산을 등반한 기사가 남아 있다. 1968년에는 도봉산 선인봉에 연대 베첼러길을 개척했다. 최근에도 연세산악회는 재학생과 OB가 함께 활발한 해외 등반을 활동을 이어왔다. 올해 여름에는 정호진(넬슨스포츠 대표이사)을 주축으로 평균나이 60세의 등반대가 북미 최고봉 데날리 원정에 나섰다. 연세산악회는 월간<산>과도 관계가 깊다. 김승진, 안중국, 박인식 3명의 연세산악회 출신이 월간<산> 기자로 일했다. 그중 2명은 편집장까지 역임했다.

취직만큼 힘든 산악회 가입

일반적인 대학 산악동아리가 '산악부'라고 불리는 것과 달리 연세대 산악동아리는 '연세산악회'로 불린다. 왜 그런지 재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자기들도 '회'와 '부'의 차이에 대해 깊이 고심해 봤지만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다.

연세산악회에는 현재 33명의 재학생이 활동 중이다. 2학기에는 40여 명의 신입생이 지원했고 그중 10명 내외를 선발한다. 신입회원 모집은 에브리타임(대학교 커뮤니티 SNS)과 인스타그램을 활용한다.

연세산악회에 가입하려면 면접산행을 통과해야 한다. 지원자가 워낙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과정이다. 1학기 면접산행은 북한산 의상능선과 도봉산 Y계곡에서 진행되었다. 60명 넘는 지원자가 참여했다. 두 코스 모두 초보자가 가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담이 약한 초보자는 눈물 콧물 흘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고도감이 센 곳이다.

연세산악회 장비 걸이.

"면접산행은 살짝 힘든 곳으로 가요. 일부러 빠른 걸음으로 가기도 해요. 산악회 분위기와 산행을 직접 경험해 보고 지원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시간인 거죠. 말이 면접산행이지 사실 체험산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면접산행 이후 온라인 화상 면접도 진행했다. 지원 동기와 산행 소감 등을 물어보고 최종 합격자를 선발했다. 기업 채용절차에 빗대자면 서류전형, 실기전형, 임원면접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작년에 3차 전형까지 통과해 연세산악회에 들어온 민지선씨는 "나 3차까지 보고 들어온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연세산악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대학산악부 전반적으로 침체기였던 과거 활동 인원이 거의 없어 소멸될 뻔했던 적도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산악부사도 새옹지마'다.

연세산악회도 다른 대학산악부처럼 코로나 덕을 봤다. 실내 활동이 제한되면서 상대적으로 활동이 자유로운 산악부가 인기를 끌었다. 올해부터는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며 산악회의 인기가 반감했다. 70명 넘던 지원자가 40명으로 줄어든 것. 그래도 여전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다. 코로나 이후 모든 홍보와 모집은 온라인상으로만 진행된다. 홍보 부스나 홍보 포스터도 없다.

"지금 활동하는 재학생 중에 코로나 이전의 산악회를 경험해 본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예전에 신입을 어떻게 모집하고 홍보했는지 전승된 게 없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중앙도서관 벽을 탔다고 하더라고요."

대학가의 세대교체는 빠르다. MZ세대 내에서도 월드컵을 기억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듯, 대학가의 세대는 코로나 이전을 기억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 코로나 이전의 시절은 이미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암벽등반이 처음인 신입생도 있었지만 OB선배와 함께해 안전하게 등반을 마쳤다.

MT도 등반의 연속

연세산악회는 등반을 활동의 우선순위에 둔다. 올해 1학기 첫 산행부터 바위를 등반했다. 삼성산 숨은암장을 시작으로 북한산 노적봉, 인수봉, 원효릿지, 도봉산 선인봉을 올랐다. 다른 동아리는 MT 가서 술 마실 동안 연세산악회는 원주 간현으로 MT 가서 등반을 했다. 여름방학에는 며칠 동안 야영하며 설악산을 종주하고 토왕골을 등반했다.

2학기에는 등반 일정을 9월과 10월에 몰아넣었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는 백패킹이나 장거리 종주로 내실을 다질 예정이다. 주중에는 일정이 없지만 시간이 맞는 회원들끼리 번개 실내클라이밍 모임을 가진다.

요즘에는 특히 실내클라이밍을 하려고 산악회에 들어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클라이밍이 트렌디한 운동으로 떠오른 탓이다. 연세대가 위치한 신촌·홍대 주변에는 일명 '핫플'이라고 불리는 유명 실내클라이밍장이 많다. 그 탓에 연세산악회 재학생 중에는 산에는 안 나오고 실내암벽 활동만 나오는 불온분자(?)가 꽤 있다.

"실내클라이밍 활동만 나오는 회원이 절반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이 고민이기도 하지만 산악회의 결속력이 강해지면 그런 친구들도 산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실내클라이밍만 한다고 해서 활동에 제한을 두거나 내쫓지는 않아요."

OB선배와 재학생이 함께 오른 북한산 노적봉 정상.

기수제 폐지하고 콧대 낮춘 산악회

연세산악회는 재학생은 4년 전 기수제를 폐지했다. 일찍이 기수제를 폐지한 다른 대학산악부에 비해 비교적 최근까지 기수제를 유지한 편이다. 공정과 평등에 민감한 요즘 대학생은 당연히 기수제에 대해서 부정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기수제가 무조건 안 좋다기보다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수제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등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선배로서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돼요. 노련한 선배가 산행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안전이 확보되고 든든할 것 같아요. 하지만 기수제가 있으면 진입장벽이 높아질 것 같아요."

"기수제에서는 연세산악회의 유구한 역사가 부각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소개할 때 93기라고 말하면 뭔가 멋있잖아요."

"저는 기수제로 바꾸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중 가장 나이 어린 이서현씨는 기수제를 적극 찬성한다. 다른 대학산악부들도 보통 나이 어린 신입부원은 기수제를 옹호하는 편이다. 늦깎이로 산악부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기수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동안 연세산악회는 다른 대학산악부와의 교류가 적어 베일에 싸여 있었다. 활동하는 인원이 많고 선등이나 교육도 외부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콧대 높은 잘 나가는 산악부였다. 이제부터는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을 예정이다.

지난 8월 고학번 재학생들이 대거 졸업하면서 산악회 내의 고급 인력 이탈이 심화되었다. 신입생은 물밀듯 들어오지만 교육과 선등을 주도할 선배가 부족한 것. 앞으로는 다른 대학과의 교류를 확대해 이런 문제를 극복할 방침이다. 활동의 범위를 넓혀 더 활발하고 친밀한 산악회로 변신하겠다는 게 연세산악회의 새로운 목표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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