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오키나와’ 농장에 간 한국 여성들

2022. 11. 18.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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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다보면 요즘 자주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지금은 50년이 지나 우리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한국 여성이 계절노동자로 일본 오키나와 파인애플 가공공장에 갔던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이 공백을 재빨리 눈치챈 국제기능개발협회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매년 한국 여성 1000명 이상을 오키나와로 공수했다.

한국 계절노동자 오키나와 송출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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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다보면 요즘 자주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계절노동자. 이 단어는 외국인 노동자에서 이주노동자로 개념이 바뀌는 가운데 새롭게 등장한 단기 농촌 노동 인력을 뜻한다. 신문에 등장한 계절노동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2015년 충북 괴산에 배추 수확을 위해 투입된 ‘외국인 계절노동자’다. 이때 전국 최초로 시범사업이 시행됐고 중국에서 19명이 들어와 두달간 일했다. 그것이 올해는 배정인원 1만6924명, 실제 들어온 인원은 약 7000명으로 파악된다. 배정인원을 채우지 못한 것은 코로나19 영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급격하게 계절노동자로 들어오는 인력이 많아지면서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다른 일자리를 위해 중도에 현장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다. 농장주와 불화 등으로 인한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성폭력 등도 문제다. 매년 계절노동자 손길이 절실한 우리 농가들에게는 중대한 문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계절노동자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농촌으로 임금을 좇아 이동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사실 계절노동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이는 기후와 식물 생장 차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중국 화북지방에서 창장강 이남으로 이동하는 위도(緯度)차 계절노동이 있다. 또 산악지대인 스위스에서는 고지대 사람들이 일찍 농사를 마치면 저지대로 이동해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50년이 지나 우리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한국 여성이 계절노동자로 일본 오키나와 파인애플 가공공장에 갔던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되고 대만과는 국교가 단절되는 정치적 상황 아래 대만 계절노동자들이 농장에서 퇴거하면서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에 일손이 크게 부족했다.

이 공백을 재빨리 눈치챈 국제기능개발협회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매년 한국 여성 1000명 이상을 오키나와로 공수했다. 초창기 월급은 당시 한국 노동자 평균 임금인 4만원이었고, 빈곤했던 집안의 여성들은 잔업도 마다하지 않으며 추가 수당을 받아 7만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벌어 집에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났다면 좋겠지만, 오키나와로 간 여성들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본 본토인들에게 차별당하던 오키나와인들은 한국 여성들을 민족 차별로 대했고 급기야 일제식민지 당시의 근로정신대 여성을 투영했다. 한국 여성들은 반강제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손가락이 잘리거나 기계에 깔려 사망하는 산업재해를 수없이 당했다. 이렇게 4년간 지속되던 오키나와 계절노동자 수출은 1976년에 종료됐다. 당시에 오키나와에 다녀왔던 여성들은 이미 돌아가셨거나 고령의 할머니가 됐을 테지만 결코 오키나와인들의 부당한 대우는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 계절노동자 오키나와 송출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다. 1973년은 우리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노동력을 팔기 위해 들어온 이들의 나라도 그러할 것이다. 온당한 대우를 해주고 따듯한 동료애로 챙긴다면 그들은 훗날 우리의 소중한 이웃으로 남지 않을까? 우리 농민들은 훌륭한 외교관이 될 자질이 있다.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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