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28) 명월

2022. 11. 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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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기의 짜릿한 찰나의 맛 보러
죽음의 골짜기에 빠져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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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나비는 불꽃에 뛰어들면 불에 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불꽃을 향해 몸을 날린다. 치직. 티끌 같은 재가 돼 바람에 흩날려버린다. 그 허망한 모습을 보고서도 또 다른 부나비가 불꽃에 뛰어든다. 치직 치직 치직. 바람은 계속 불어 부나비의 흔적을 없앤다.

명월관 기생 명월이는 타오르는 불꽃이다. 한량들은 명월이와 살을 섞으면 복상사한다는 걸 알면서도 소문으로만 듣던 명기의 짜릿한 찰나의 맛을 보러 돈 보따리를 싸들고 죽으러 가는 것이다.

명월관(明月館)! 그 이름만으로도 한량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곳. 달 밝은 밤이면 그곳엔 감로주가 있고 산해진미가 있고 가야금 선율이 흐르고 옥구슬 구르는 듯한 창(唱)이 울리고 그리고 아직 귓불에 솜털이 가시지 않은 천하일색 동기(童妓)가 섬섬옥수를 뽐내며 술을 따른다.

1909년 경성에 안기환이라는 궁중 요리사가 요릿집을 차려 옥호를 명월관이라 지었다. 이듬해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빼어난 기생들이 갈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명월관으로 하나둘씩 들어와 단순한 음식점 종업원으로 요리상을 날랐다.

관기뿐만 아니라 고종이 폐위된 이후라 궁녀들도 갈 곳을 찾다가 명월관으로 들어왔다. 요릿집 여종업원, 그것으로 그들의 끼를 잠재울 수 있을까?

요리상 옆에 앉아 반주를 따르던 그녀들이 한잔 두잔 얻어 마시더니 요릿집은 자연스럽게 기생집이 됐다. 명월관은 명실공히 색향(色鄕) 평양의 화춘관과 어깨를 겨누는 조선 최고의 기생집이 됐다.

최고의 기생집에 최고의 기생 명월. 백옥 같은 피부에 초승달 같은 눈썹, 사슴 눈에 오똑한 콧날 아래 앵두 같은 입술. 명월이 유명해진 건 빼어난 미모만이 아니었다. 명월의 치마 속 깊숙이 감춰진 명기, 그 짜릿한 찰나의 쾌감은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다는 한량들의 무모함이 명월을 신비의 인물로 만들었다.

수많은 한량이 명월의 배 위에서 죽어나가는 데는 한일(韓日)이 따로 있지 않았다. 명월관이 흥청거릴 때는 일제강점기라 한량기가 다분한 일본 거상·관료도 죽음의 골짜기에 빠져들었다.

미인은 박명이랬다. 명월은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다.

일본경찰 범죄연구원이 명월의 시신에서 명기를 적출해 포르말린에 넣어 보관한다. 무엇이 뭇 남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명월의 명기는 연구대상이 돼 경찰서 지하실 깊고 깜깜한 보관실에 안치됐다.

그곳에 보관된 것은 명월의 명기만이 아니었다. 또 하나, 그것은 백백교(白白敎) 교주였던 전용해의 두개골이었다.

1930년에서 5년여간 경기도 가평 일원에선 해괴한 사이비종교, 백백교가 횡행하고 있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 전용해가 신의 아들이라 자처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혹세무민하여 교세를 확장해 수많은 몽매한 사람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간음을 일삼았다.

1937년 내부고발로 백백교가 일망타진됐을 때 전용해의 사주로 살해돼 암매장한 시체가 발굴된 것만 346구였다.

어떻게 무학무식(無學無識)한 인간이 수많은 신도를 그러모아 그렇게 잔혹한 수법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 그것은 연구대상이 됐다.

참수된 그의 두개골은 범죄인간의 표본으로 포르말린 속에 저장돼 경찰서 지하실 범죄연구소 보관실에 있는 명월의 명기 옆에 안치됐다.

세월이랄 것도 없이 해방이 되고 일제치하에 있던 경찰조직도 우리 경찰로 넘어왔지만 아무도 범죄연구표본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다.

까맣게 잊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은 개미 한마리가 될 뻔한 이 표본 두개가 우여곡절 끝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4년 SBS 프로그램 ‘백만불 미스터리’의 한 코너 ‘국과수 X파일’에 두개의 표본이 등장했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사무총장인 혜문스님이 이걸 보고 분개했다. 경찰청을 상대로 ‘신체 표본 보관 중지’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에서 순순히 내어주자 2011년 10월25일 화장해 봉선사에서 위령제(慰靈祭)를 올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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