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돼”…유럽의 ‘구애’에 맞서는 시민들

김규남 2022. 11. 18.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샤름엘셰이크 현장][제27차 유엔기후변화총회]
전쟁발 에너지 위기, 아프리카로 몰려든 유럽국가들
환경단체 “에너지 아파르트헤이트 중단해야” 외쳐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정한 ‘에너지의 날’인 15일(현지시각) 아프리카인들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의 총회장 캠퍼스 내에서 ‘아프리카에서 가스는 안 된다’는 내용의 집회를 열고 있다. 김규남 기자 a href=\"mailto:3strings@hani.co.kr\"3strings@hani.co.kr/a

목에 굵은 핏대를 세우고 발언자들이 선창했다. 40여명의 집회 참석자들은 팔뚝질을 하며 후창을 했다.

“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된다!” “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된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기후정의!”

“언제 원하는가?” “지금 당장!”

“더는 화석연료는 안 된다!”

“힘을 합친 아프리카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15일(현지시각)은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개최 중인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정한 ‘에너지의 날’이었다.

에너지의 날에 맞춰 열린 ‘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된다’는 집회에서, 아프리카인들이 목청껏 외친 구호가 총회장 캠퍼스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들은 ‘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된다’(Don’t Gas Africa)는 펼침막과 500유로 지폐 모형의 펼침막 위에 ‘피 흘리는 돈’이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집회를 이어갔다. ‘아프리카에 가스는 안 된다’는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이번 27차 당사국 총회의 주요 이슈 중 하나다.

발언자로 나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가브리엘 클라센(24·Gabriel Klaasen)은 “지난 1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젊은이들이 오늘의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임을 열었다. 이렇게 21개 아프리카 국가의 7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대안인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촉구하기 위해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며 “우리는 미래와 정의, 변화에 투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짐바브웨에서 온 한 참석자는 “아프리카 가스 개발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유럽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에너지 위기 봉착한 유럽, ‘가스를 향한 아프리카 질주’

아프리카는 왜 핏대를 세워가며 가스에 반대하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아프리카 정부와 엘리트들은 가스 개발을 하려고 하는 반면 아프리카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발단은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가스를 향한 질주’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유럽으로 보내는 가스 공급량을 줄였다. 러시아 가스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등 거센 에너지 위기에 봉착하자, 이들이 아프리카로 가스를 구하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시민단체인 ‘돈트 가스 아프리카’와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 이니셔티브’는 지난 12일 발표한 ‘화석연료의 오류’ 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아프리카의 에너지 시스템은 기로에 서있다. 한 방향으로 청정에너지의 미래가 있다. 탄소가 적고 저렴한 공공 소유·분배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아프리카인 수억명에게 전력을 제공하고 에너지 빈곤을 종식시킨다. 다른 방향은 아프리카인들이 화석연료에 종속되는 길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다국적 화석연료 기업을 앞세워 아프리카에서 가스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아프리카 순방 때 세네갈을 방문해 가스전 개발 협력을 제안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앙골라, 알제리, 콩고민주공화국과 가스 공급량 확대 등의 협정을 체결했다. 유럽연합(EU)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천연가스를 보유한 나이지리아로부터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정한 ‘에너지의 날’인 15일(현지시각) 아프리카인들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의 총회장 캠퍼스 내에서 ‘아프리카에서 가스는 안 된다’는 내용의 집회를 열고 있다. 김규남 기자 a href=\"mailto:3strings@hani.co.kr\"3strings@hani.co.kr/a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엘리트들은 유럽의 구애를 반기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연합 의장인 세네갈의 마키 살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아프리카인 6억명 이상이 여전히 전기없이 살고 있다. 산업화에 가장 뒤처진 대륙인 아프리카는 기본 에너지를 제공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며 가스 개발을 강조했다. 예미 오신바조 나이지리아 부통령은 최근 아프리카 전역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으로 곧바로 “도약하려는 순진한 믿음”을 비난하면서 “아직 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산업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매장된 가스는 소수 나라에 몰려 있다. 2020년 기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가스를 보유한 나라는 아프리카 대륙 매장량의 32%가 매장된 나이지리아다. 이어 알제리(25%), 모잠비크(16%), 이번 27차 세계기후총회(COP27) 의장국인 이집트 10%, 리비아 8.5% 순이다. 이 5개국이 아프리카 가스 매장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매장된 가스의 상당수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전체 매장량의 30%만 현재 생산중이고, 7%는 개발중이다. 아프리카의 3대 가스 생산국은 알제리, 이집트, 나이지리아다. 이 세 나라가 지금까지 생산된 아프리카 가스의 87%를 차지한다. 2020년 아프리카는 376억톤의 가스를 수출했고, 이는 전세계 가스 무역량의 약 9%에 해당한다. 지난해 아프리카는 대륙에서 생산된 가스의 약 40%를 수출했다. 주요 수출 지역은 유럽니다. 이중 약 83%가 유럽으로 수출됐다.

화석연료의 위험성…좌초자산, 일자리 감소, 기후위기 악화

이러한 상황에서 보고서는 아프리카의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먼저, “아프리카의 정책·의사 결정권자는 아프리카가 가스 개발을 추구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세계적인 대응으로 인해 화석연료 관련 시설은 결국 좌초자산(시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치가 하락하고 부채가 돼버리는 자산)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 이유다.

보고서는 좌초자산으로 인한 글로벌 손실 수익을 2035년까지 3조~28조달러(3940조~3경6848조원)로 추산했다. 이어 “(화석연료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되면 아프리카 정부의 예상 세수가 크게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이익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화석연료의 사용이 아프리카인들의 에너지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화석연료 생산이 지속돼온 나이지리아에서는 2019년에 인구의 55%만 전기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화석연료 관련 일자리는 2050년까지 약 7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화석연료 사용은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보고서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극한기상 현상은 심각성과 빈도에서 모두 증가할 것”이라고 짚었다.

아프리카의 기후 싱크탱크인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의 설립자인 무함마드 애도우는 “아프리카에 필요한 것은 풍부한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이고 분산된 에너지 시스템”이라며 “이것이 아프리카의 에너지 아파르트헤이트(백인과 유색인종의 차별정책)를 종식시키고 세계를 정의로운 전환의 길로 인도하는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우간다의 기후운동가인 바네사 나카테는 “세계가 마침내 기후위기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유럽과 북미의 주요 석유·가스 회사들은 그곳에서 영업할 수 있는 면허를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몇 년 동안의 채굴과 이익을 더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가스는 아프리카에 위험한 방해물”이라고 지적했다.

샤름엘셰이크/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