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서울시장이 파리에서 놓친 것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세종문화회관의 대대적 리모델링 계획을 밝혔다. 파리의 복합 공연장인 ‘필하모니 드 파리’를 방문한 자리였다. 오 시장은 이 공연장을 둘러본 뒤 “세종문화회관에 필하모니 드 파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 건물 외양 외에는 대부분 뜯어고치겠다는 개축 방향은 옳다. 1978년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은 역사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시설 노후화와 음향 문제 때문에 공연계와 관객들의 원성이 적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이 무산된 뒤 장기 표류 중인 서울시향 콘서트홀까지 들어서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파리 방문에서 오 시장이 하나 놓친 것이 있다. 바로 필하모니 드 파리의 위치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광화문처럼 파리 중심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파리 동북부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19구에 있다. 보통 파리 지하철 5호선이나 7호선에서 내리는데, 한두 정거장만 더 가면 우리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 드 프랑스’로 행정 구역이 달라진다. 서울에 비유하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도 중심가가 아니라 외곽 지역인 셈이다.
오 시장이 극찬한 파리 최고의 복합 공연장이 동북부 끝자락에 들어선 이유가 있다. 대도시 내의 균형 발전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도축장이 있었다. 반면 파리의 기존 공연장들은 대부분 센 강 주변에 밀집해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된 역사적 명소인 샹젤리제 극장, 소프라노 조수미가 즐겨 서는 샤틀레 극장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문화적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는 거의 30여 년에 이르는 장기 계획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했다. 우선 1990년 명문 파리 음악원이 19구로 이전했다. 1995년 악기 박물관과 공연장을 갖춘 ‘시테 드 라 뮈지크’와 2015년 필하모니 드 파리까지 차례로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단지 건물 하나를 짓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도시 계획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또다시 공연장을 새로 짓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 시장의 말처럼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을 통해서 서울 강남과 강북의 문화적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흔히 공연장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리모델링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미국 뉴욕 필하모닉의 전용 공연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1962년 개관 직후부터 음향 문제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자 수차례 공사를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음향의 저주(acoustic curse)’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코로나 기간 동안 5억5000만달러(7300억원)를 쏟아부어서 대대적인 재공사에 들어갔다. 공연장의 이름도 기존의 ‘에이버리 피셔 홀’에서 최대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데이비드 게펜 홀’로 바뀌었다. 세종문화회관 역시 자칫 손을 잘못 대면 나중에 시민 혈세가 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공연장 리모델링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가 다행히 우리 곁에 있다. 지난달 뉴욕 필의 재개관 기념 공연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지휘자가 서울시향의 차기 감독인 야프 판 즈베던이다. 이참에 세종문화회관 리모델링에 대해서도 자문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마도 마에스트로(거장)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첫째도 음향, 둘째도 음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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