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결국 쌀은 우리의 생명이다

국제신문 2022. 11.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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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45년 만 최대 폭락, 곡물자급률도 21% 불과
양곡관리법 조속 개정해 균형적 쌀 수급안 마련을

얼마 전 근무하는 학교의 영양사 선생님께 들은 얘기인데, 요즘 아이들의 밥 먹는 양이 예년에 비해 현격히 줄었다고 한다. 급식하는 학생의 숫자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잔반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식이나 튀김류의 반찬을 만들려니 건강하고 균형 있는 식단과 거리가 멀어지고, 또 반대로 하자니 아이들이 잘 먹지 않아 여러모로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작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으로 십 년 전에 비해 14.3㎏이 줄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1990년에는 무려 119㎏이었다고 하니 이는 점점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쌀밥보다는 밀 중심의 다양한 식단을 선호하면서 초래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우선 필자부터도 하루 세끼 꼬박 쌀밥을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에 비해 그 수요는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는 가격폭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치로 폭락하고 말았다. 80㎏ 한 포대 기준으로 21만 원대였던 것이 지금은 16만 원대로 떨어졌다고 하니 농민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최근 물가상승으로 농자재 값도 치솟아 실제 노동에 비해 소득은 더 줄어 체감하는 피해는 훨씬 더 큰 실정이다.

사실 농민은 정부 주도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한 산업화 과정에서부터 늘 희생을 강요당해 왔다. 경제개발로 인한 우리 사회의 급진적 성장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시간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지만, 그 이면엔 저곡가 정책으로 고통받은 농민의 현실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대가 또한 혹독했다. 수많은 농민이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농촌은 점점 땅을 잃고 황폐해져 갔다.

흔히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그 밥은 곧 쌀이자,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숱한 서사가 녹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볍씨가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7000~1만3000년 전, 구석기 시대의 토탄층(土炭層)에서 ‘소로리카(Sororica)’로 명명되는 59톨의 볍씨가 출토되면서 한반도는 인류 최초의 쌀 문명의 기원지로 밝혀지게 된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슨은 나라마다 그 문화를 이루는 저층에는 그들이 먹는 음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쌀은 우리의 피와 살을 만들고 한민족의 문화를 형성해온 원형이라 할 수 있다.

‘八十八’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 ‘米’처럼 한 톨의 쌀을 얻기 위해선 여든여덟 번이라는 농민의 땀과 수고로움이 필요하며, 또한 한 톨의 쌀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재해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항했는지 우리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농경 공동체가 형성되고 서로 돕는 협업문화가 정착하면서, 이는 면면히 우리 유전자 속에 전해지고 있다.

흔히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의 권리이며, 민중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일컫는데 특히 식량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현재 UN식량농업기구는 한 나라의 곡물자급률 위험수위를 65%로 경고하는데, 우리나라는 겨우 21%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그 곡물 중 대부분 쌀이 그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해 만약 농민이 쌀농사마저 포기한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적 식량 위기에서 우리가 받을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 최대 쌀 생산국에서 최대 쌀 수입국으로 변해버린 필리핀의 사례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쌀은 단순히 수요·공급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재단돼야 할 소비재가 아니다. 지금 비록 쌀 생산이 과잉 상태라 하더라도 정부가 균형적인 쌀 수급에 대한 목표를 정하고 시장격리와 생산조정을 통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여야 간에 논란이 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그래서 조속한 합의와 함께 시행돼야 할 이유다.

지난주가 농업인의 날이었다. 농민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土’에서 따온 ‘十一’에서 유래한 11월 11일, 문득 신경림 시인의 시 ‘농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이제 농민이 다시는 이러한 자조와 한탄으로 신명을 풀어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쌀은 곧 우리의 생명이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김요아킴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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