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러 없이 살려는 서구

정철환 유럽 특파원 2022. 11. 18.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2000년대 이후 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바탕엔 ‘중국 효과’가 있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전 세계에 쏟아지면서 물가 걱정이 사라졌다.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는 최종 소비재뿐만 아니라, 각종 중간재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덕분에 기존 제조 업체들은 더 많은 이윤을 누렸고, 소비자들도 적절한 품질에 더 싼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중국은 초(超)거대 소비시장이기도 했다. 공급과 수요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을 포함한 서방 주요국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성장이 이뤄지는 궤도에 올랐다.

러시아도 이 과정에서 중국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에너지 수요 급증을 초래한다. 때마침 러시아가 세계 2위의 화석연료 수출량을 바탕으로 중국발 글로벌 경제성장이 일으킨 에너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줬다.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이 없었다면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일찌감치 폭등해 경제성장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콤비 플레이’가 있었기에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급격히 회복했고, 쉼 없는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리 덕분에 서방이 큰 이득을 누렸으니, 이제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에 그치지 않고, 세계 질서의 중심축 역할도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지금 양국이 서방세계에 제기하는 ‘도전’은 그동안 우리가 누린 ‘공짜 점심’에 대한 후불 청구서인 셈이다.

서방의 딜레마는 그 대가로 이 두 국가가 부과할 새 국제 질서를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였다. 고민이 길어지려는 찰나,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조급함이 일을 그르쳤다. 서방이 상호 의존의 늪에 완전히 빠져 옴짝달싹 못 하기 직전에 중국은 분발유위(奮發有爲)에 나섰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너무 빨리 발톱을 드러낸 셈이다. 서방세계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권위주의 국가가 세계 질서의 중심에 설 때 어떤 일이 닥칠지 그 예고편을 봤다. 한국처럼 경제성장이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는 완전히 깨졌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속내를 다 들여다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더 이상 값싼 재화와 에너지가 없는 세상에서 부(富)의 논리보다는 안보의 논리가 앞서는 시대다.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 흔히 말하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달콤하다고 해서 항구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눈치를 보며 사는 길을 택할 수 있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