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촬영중인데, 캐나다 총리에 화낸 시진핑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2. 1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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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연회장서 트뤼도 불러세워 “어제 대화 왜 언론에 다 풀었나 어떤 결과 나올지 모른다” 협박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연회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둘 사이의 대화가 언론에 알려진 것에 항의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69) 중국 국가주석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연회장에서 쥐스탱 트뤼도(51) 캐나다 총리에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다며 항의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외국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이뤄졌다. 시 주석이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 국가 정상을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달 당 총서기직 3연임에 성공하며 중국 내 정치적 기반을 공고히 한 그가 앞으로 중국에 대한 외국의 비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은 트뤼도 대통령과 약 10분간 약식 회동을 했다. 2017년 이후 첫 만남이다. 이후 캐나다 정부 관계자가 언론에 “트뤼도 총리가 중국의 점점 더 공격적인 ‘간섭 활동’에 대해 시 주석에게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러자 다음 날인 16일 G20 정상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열린 연회에서 시 주석이 트뤼도 총리를 불러 세워 1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 장면은 방송 풀(pool) 카메라에 포착됐다. 풀은 취재 인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여러 언론사를 대표해 현장을 취재하는 방식이다. 시 주석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가 나눈 모든 대화가 언론에 유출됐다”며 “이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또 “우리 (대화)가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았다”며 “신용이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더 좋은 소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즉각 중국 측 통역이 영어로 트뤼도 총리에게 말해줬다. 시 주석은 통역의 말을 끊고 “그렇지 않다면 그 결과는 알 수 없다(不好說)”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시 주석의 항의를 들은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자유롭고 공개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지지한다”며 “중국과 함께 건설적으로 각종 현안을 논의하길 기대하겠지만, 양국이 동의하지 않는 일도 있다”고 했다. 트뤼도 총리가 말할 때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아랫입술을 깨문 시 주석은 “(대화의) 여건을 만들자. 여건을 만들자”며 악수를 청하고 자리를 떴다. 트뤼도 총리도 곧바로 연회장을 떠났는데 영국 신문 가디언은 “트뤼도 총리가 (시 주석에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시 주석뿐 아니라 다른 나라 정상도 비공개 회담에서 상대방에 대한 항의와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장 캐나다에서는 “시 주석이 지나치게 무례하다”고 분노하고 있다. 가이 생 자크 전 주중 캐나다 대사는 캐나다 방송 CTV에 “중국 정상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시 주석은 분명히 캐나다를 소국(minor country)으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찰스 버튼 맥도널드 로리에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은 캐나다 글로벌뉴스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시 주석의 말은 마피아가 누군가를 위협할 때 사용할 법한 문구로 이러한 협박성 발언은 통상적으로 외교부 관리들한테 맡긴다”고 했다. 시 주석이 직접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나섰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의 국익이나 존엄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항의하는 중국 외교 행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시 주석의 돌발 발언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이 평소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닌데도 서방 지도자들이 중국을 무시한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고, 당 총서기 3연임 시작 이후 높아진 위상에 따라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뜻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17일 오후까지도 중국 관영 매체는 관련 뉴스나 해당 영상을 보도하지 않았는데, 이는 지도자의 돌발 발언에 대한 선전 지침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뤼도 총리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는 진보적 성향에 현실주의 외교 노선으로 중국과 수교를 이끌었다. 하지만 아들인 트뤼도 집권 이후 양국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2018년 캐나다는 미국 사법 당국의 요청으로 중국 최대 통신 장비 회사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을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 사실을 안 시 주석은 크게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에 머물고 있던 캐나다 국적 전직 외교관과 사업가를 간첩 협의로 체포했다. 양측의 협상 끝에 체포됐던 사람들은 2021년 풀려났다.

이달 초 캐나다 언론은 정보 당국을 인용해 2019년 캐나다 총선에서 최소 11명의 후보가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트뤼도 총리는 “중국이 캐나다의 민주주의를 겨냥해 공격적인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9~2020년에는 홍콩 내 반중 시위와 캐나다의 홍콩 망명자 수용 문제를 놓고 양국 외교관과 정치인 사이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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