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끗 차이죠
김태언 기자 2022. 1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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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종로구 '보안1942'.
폐관한 여관을 활용한 전시공간답게 스산한 분위기였다.
전시작은 높이 2m 넘는 종이에 그린 지렁이, 돈벌레 형상을 한 불화 위주다.
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 끗 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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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 박웅규 개인전 ‘귀불’
불화 차용해 벌레의 균형미 그려
불화 차용해 벌레의 균형미 그려
14일 서울 종로구 ‘보안1942’. 폐관한 여관을 활용한 전시공간답게 스산한 분위기였다. 전시작은 높이 2m 넘는 종이에 그린 지렁이, 돈벌레 형상을 한 불화 위주다. 음습함을 돋우는 작품 12점은 20일까지 열리는 전시 ‘귀불’의 출품작. 서울시립미술관의 ‘2022년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박웅규 작가(35)의 작품이다.
박 작가는 2016년 첫 개인전을 연 신진 작가지만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벌레 등 통상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저는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려요. 언젠가 나방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엄숙해 보이더라고요. 늘 보던 벌레의 징그러움과는 달랐습니다. 반복적인 마디의 구조에서, 촘촘하게 솟아있는 잔털에서 완전한 균형미를 느꼈어요.”
올해 박 작가가 불화를 전면 차용한 것도 “불화의 대칭적인 조형미 때문”이다. 그가 그린 불화의 일부 보살은 벌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화와 벌레의 공통점인 규칙적 장식들은 때론 강박적으로 다가오지만 묘하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벌레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이는 벌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벌레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 끗 차이’라고 말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옛집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만 100여 개가 있었다.
그는 “가끔 성스러운 그 물건들이 마치 절 감시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며 “부정과 긍정이 극단을 향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둘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각을 달리하면 포용의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료.
박 작가는 2016년 첫 개인전을 연 신진 작가지만 아트선재센터, 일민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하며 주목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벌레 등 통상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을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의외의 말을 했다.
“저는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려요. 언젠가 나방을 관찰한 적이 있어요. 엄숙해 보이더라고요. 늘 보던 벌레의 징그러움과는 달랐습니다. 반복적인 마디의 구조에서, 촘촘하게 솟아있는 잔털에서 완전한 균형미를 느꼈어요.”
올해 박 작가가 불화를 전면 차용한 것도 “불화의 대칭적인 조형미 때문”이다. 그가 그린 불화의 일부 보살은 벌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불화와 벌레의 공통점인 규칙적 장식들은 때론 강박적으로 다가오지만 묘하게 아름다워 보인다. 그는 “벌레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이는 벌레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벌레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작가는 ‘성스러운 것과 기괴한 것은 한 끗 차이’라고 말한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옛집에는 십자가와 마리아상만 100여 개가 있었다.
그는 “가끔 성스러운 그 물건들이 마치 절 감시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처럼 느껴졌다”며 “부정과 긍정이 극단을 향하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둘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각을 달리하면 포용의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무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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