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돌고 나니] 별난 만남, 아름다운 사람들

이주연 산마루교회 담임목사 2022. 11. 1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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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거 내려와요. 위에 올라가서 밟고서 하면, 콩대가 눌려서 작업이 더뎌져요!” 탈곡하느라, 산더미처럼 쌓인 마른 콩대 위에 올라가 일하는 내게, 오늘도 소리치며 야단야단이다. 목사가 되어서 이런 야단을 맞는 일은 40년 목회 중 평창에 와서 처음이다. 일하다 중간에 또 한마디다. “내가 목사님이 아니면 벌써 일하다 가버렸어요!” 그 형제는 늘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는 평창 제일가는 농군이다. 산골에서도 하루 품삯이 15만~20만원인데 품삯도 받지 않고 장비까지 가지고 와서 도와준다. 오늘도 새벽 찬바람 속, 무서리 내린 산언덕길을 다 낡은 트랙터에 탈곡기를 매달고 털털거리며 한 시간이나 달려왔다. 야단을 주고받으며 더 정겨운 관계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일까? 본심은 말보다 중요하다. 계산 속에 주고받는 친절한 말들은 얼마나 우리 영혼을 시들게 하는가! 싸워도 진정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결코 관계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주연 목사가 강원 평창에서 농사일을 하는 모습. /이주연 목사 제공

“목사님, 이제 일 그만하고 내려가세요. 오늘이 수요일인데!” 한 형제가 나를 걱정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내게 귀띔해 준다. 발목 인대를 다쳐 일하지 말라 하는데, 기어코 탈곡기 돌아가는 먼지바람 속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내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 그 형제는 서울역 상노숙자(?)였다. 장발에 산발을 하고, 술 취하여 거리에서 자던 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새벽에 기도하고 회개하며, 진리를 깨닫고 자유케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술은 벌써 끊었다. 상처도 원한도 지워가고 있다. 중독치유센터를 건립해 달라고 매일 새벽 기도하고 있다. 진리에 눈을 떠 거룩해져 가고 있다. 인간이란 근본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흙수저냐 금수저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 영혼이 깨어났느냐, 영원함과 거룩함의 갈망을 따라 길을 가느냐 아니냐이다.

이번 가을걷이는 특별하다. 첫해 이 밭에서 얻은 첫 수확은 포기였다. 돌밭에 무제초제, 무농약, 유기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맛보았다. 동네에선 그렇게 해서는 농사 못 짓는다고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엔 200㎏, 지난해엔 320㎏, 올해는 드디어 약콩 약 1000㎏에 이르렀다. 약콩은 서리태에 비하여 수확량이 훨씬 적다! 지난해에 이르러 돌밭을 옥토로 만들었고, 나름 농사 노하우가 생긴 덕이다. 그간 밭에서 꺼낸 돌이 15톤 덤프 트럭으로 70대 이상은 되었으리라. 봄과 가을엔 돌 파내는 것이 일이었다. 그 덕에 나도 굴삭기 경력 4년 차가 되었다. 굴삭기 하루 품삯이 60만~70만원인지라, 사람들은 목사님 매일 돈 많이 번다고 조크를 던진다. 올해는 이 콩밭뿐 아니라 산비탈에 1만5000평 산채밭을 만들었다. 두릅을 심고, 더덕씨를 뿌리고, 오대산 산마늘 12만 주를 심었다.

이주연 목사가 강원 평창에서 농사일을 하는 모습. /이주연 목사 제공

얼마 전 농어촌공사 직원이 들렀다. 현장 실사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왜 오셨느냐 하였더니 마음이 훈훈해져서 왔다는 것이다. 십수 군데 현장 실사를 했는데, 농지를 내버려두지 않고 제대로 농사를 짓는 곳을 오늘 처음 보았다며, 격려의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나는 감독자도 별난 사람이 있구나 하였다. “농사 지어보아야 남는 것 없이 힘만 들고 몸이 망가지니, 누가 농사하겠나!” 하는 소리를 듣는다. 또 온통 부동산 투기요, 농지만 소유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우릴 보고도 그런 유령법인처럼 보는 눈길이 여전하다. 목사가 무슨 농사를 짓나 찾아와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처지에 징벌적 세금으로 적자 위에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이주연 목사가 강원 평창에서 농사일을 하는 모습. /이주연 목사 제공

어떤 이들은 “왜 목사가 농사냐”고 묻는다. 별난 목사 취급을 한다. 실은 내가 먼저 세운 내 인생 계획이나 목회계획도 아니다. 16년 전 서울역 노숙인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기에 돕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분들이 치유받고 회복되어 서울역에서 나오게 하고, 자립자활하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젠 청년들까지 찾아와 영농 후계를 겸하여, 새로운 내일을 꿈꾸고 있다. 아직 이룬 것은 별것 없지만, 이것이 길임에 틀림없어 계속 가는 것이다. 가야 하는 길은 매 순간이 의미이고, 가치이고, 진리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은 곧 기도이니, 영적 수련을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노동을 십여 년 해보니, 노동이 곧 기도는 아니다. 노동은 고통이고, 게다가 죄 의식 중에 하는 노동은 징벌이다. 성경은 죄의 대가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8 상)고 노동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인류에게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우리는 먹을 양식을 얻게 된 것이다. 노동하는 이는 험난한 삶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된다. 이 노동이 우리를 정화시키며, 정화된 마음이 기도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은 고통이지만 참기도를 드리게 하고 거룩함을 향하여 참되게 나가도록 돕는다. 흙 위에서, 노동 중에 드리는 기도는 카페와 커피 향 속에서 드리는 기도와는 분명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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