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직한 우리 황소, 요즘 보면 여우 같아
황희찬(26·울버햄프턴)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멕시코와 벌인 F조 2차전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이 0-2로 끌려가던 후반 30분 무렵, 황희찬은 상대 수비수가 골키퍼에게 밀어준 공을 가로채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는 골키퍼와 맞선 상황에서 슈팅을 시도하지 않고 뒤따라 오는 손흥민에게 발뒤꿈치로 부정확한 패스를 했고, 득점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 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이 만회골을 넣었으나 1대2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황희찬은 독일과의 3차전에선 후반 초반 교체로 들어갔다가 23분 만에 나와야 했다. 그라운드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 벤치에 불안감을 안겼기 때문이다. 황희찬을 빼고 수비를 보강한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에만 2골(김영권·손흥민)을 넣어 2대0 승리를 일궜다.
한국이 1승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황희찬의 첫 번째 월드컵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는 곧이어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일본과의 결승전 연장 후반에 2-0을 만드는 헤딩골을 꽂으며 마지막 순간 웃을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 소속이던 2019-2020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선 놀라운 플레이로 주가를 높였다. 리버풀(잉글랜드) 원정(E조 조별리그)에서 세계 정상급 수비수인 버질 판데이크를 개인기로 속이고 골을 터뜨린 것이다. 잘츠부르크가 3대4로 지긴 했어도 황희찬의 이름은 세계 팬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황희찬은 잘츠부르크와 라이프치히(독일)를 거쳐 2021-2022시즌 임대 형식으로 울버햄프턴(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5골(30경기)을 넣었다. 완전 이적을 하고 맞은 이번 시즌은 11경기에서 득점이 없다. 존재감이 떨어져 출전 기회 자체가 줄고 있다.
하지만 한국 월드컵 대표팀에서 황희찬이 맡은 역할은 중요하다. 손흥민(30·토트넘)이 부상 탓에 출전이 어려워진다면 황희찬이 왼쪽 날개 공격수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스피드와 돌파 능력만 부각됐던 황희찬은 현재 기술적인 안정감, 경기를 읽는 눈을 갖춘 ‘영리한 황소’로 거듭나 있다. 앞선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수비 가담 능력도 키웠다.
황희찬은 손흥민의 출전이 불투명한 현재 대표팀 후배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 한국의 첫 골 주인공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송민규(23·전북 현대)는 “내가 넣으면 좋겠지만 희찬이 형이 넣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우영(23·프라이부르크)도 “느낌상 희찬이 형 같다. 꼭 넣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황희찬은 17일 오전 훈련 후 “지난 월드컵은 굉장히 떨렸다. 이번은 또 다른 느낌이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팀, 여러 감독, 여러 선수와 경험을 하면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면서 “4년을 준비한 것을 월드컵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다. 우리를 검증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햄스트링에 약간의 이상을 느껴 치료와 회복 훈련을 병행 중인 그는 “제가 골을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도하=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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