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일제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 신중해야

2022. 11. 1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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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놋수저와 그릇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인천 부평에는 유기들을 녹여 총알을 만들던 일제 육군 조병창이 있었다.

요컨대 인천 육군 조병창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한반도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그리고 강제동원의 역사가 응축된 공간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최근 일제 조병창의 주요 건물 중 하나인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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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놋수저와 그릇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네 조상들의 일상 속에 오랫동안 함께했던 유기(鍮器)들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유기들이 사라진 것은 생활양식이 갑자기 변한 탓도 아니고, 순식간에 대체할 용품이 생긴 까닭도 아니었다. 일본이 침략전쟁 수행을 위해 금속류를 공출하면서 우리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갔기 때문이었다.

빼앗긴 유기들은 침략전쟁의 무기로 만들어졌다. 일본은 1937년 중일전쟁 후 한반도를 이른바 ‘병참기지’로 둔갑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조병창’이라는 대규모 무기 생산공장을 만들었다. 유기들은 대부분 조병창에서 녹은 뒤 일본군이 사용할 총알이 되어 전선으로 옮겨졌다. 우리 일상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던 물건이 전선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도구로 변질된 것이다. 그것도 일제 침략전쟁의 야욕을 충족시키는 데 악용되었다.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인천 부평에는 유기들을 녹여 총알을 만들던 일제 육군 조병창이 있었다. 조병창은 일제가 당시 조선에 강제했던 전시체제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의 핵심 군사시설이었다. 대륙병참기지화란 한반도를 일본과 같은 병참기지로 만들어 독자적으로 침략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내세운 슬로건이 ‘내선일체’(內鮮一體)였는데 이것을 경제적으로 치환한 것이 바로 대륙병참기지화였다. 경성제대 교수였던 스즈키 다케오는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여 대륙병참기지화는 곧 ‘물적 내선일체’를 구현하는 일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요컨대 인천 육군 조병창은 일본이 침략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한반도의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그리고 강제동원의 역사가 응축된 공간이었다고 하겠다.

인천 육군 조병창은 해방 후 줄곧 미군 부대가 주둔하다 2019년 미군의 평택 이전으로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일제가 조병창 건설을 위해 토지 매수를 본격화한 것이 1939년이니 부평의 조병창 부지는 실로 80년 만에 우리 곁에 되돌아온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일제 조병창의 주요 건물 중 하나인 조병창 병원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조병창 병원 건물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환경 정화를 위해서는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역사유적인 만큼 보존에 무게를 두고 환경을 정화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의견이었다. 학계에서는 조병창이 부정적 역사유적이지만 그 역사성과 교육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보존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조병창 병원은 이곳에 강제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이 가혹한 노역 중 상처를 입고 실려 왔던 곳이다. 그 어떤 건물보다 우리 조상의 피해가 점철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인천 육군 조병창을 철거하든 보존하든 결정은 우리 몫이다. 다만,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진정 우리 사회 공공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철거하더라도 우선 충분한 학술적 조사와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이 공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제 식민지배의 총체적 피해가 규명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조병창 건물 철거는 한국 식민지배와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지우거나 왜곡하는 데 열심인 일본 극우가 더욱 반길 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건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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