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질렸다” 기업도 자본도 사람도 탈출하는 이유

곽창렬 기자 2022. 11. 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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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美·中 갈등과 중국의 규제에 질려 탈출 움직임

지난달 구글은 “사용자가 적다”며 중국 내 번역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구글은 중국 당국이 각종 검색어를 제한하는 등 과도하게 규제하자 2010년 중국에서 철수했다가 2017년 번역 등 일부 서비스를 재개하며 중국 시장 재진출을 노려왔다. 중국어 번역 사용자도 5000만명이 넘어 성과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 구글이 번역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중국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고 철수하는 것”(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지난 2019년 구글은 미국에 판매할 네스트 온도조절기와 서버 하드웨어 일부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대만과 말레이시아로 옮겼다. 올해 들어서는 픽셀 스마트폰 생산을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중 갈등과 중국 당국의 각종 규제, 중국 소비자들의 국수주의,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 정책 등에 질린 서구 기업들의 탈(脫)중국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탈출을 노리는 건 외국 기업과 외국인들뿐만이 아니다. 일부 부유층을 비롯한 중국인 중에도 ‘차이나 런’(China run·차이나와 뱅크런의 합성어)’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해까지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은 국민의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너무 엄격한 봉쇄가 시작하면서 비난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경제가 타격받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국민이 나라를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중 갈등, 규제에 지친 외국 기업들

나이키는 지난 6월 중국 시장에서 ‘나이키 런 클럽’ 과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 앱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용자들이 조깅이나 운동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다른 이용자와 경쟁할 수 있게 지원하는 이 앱은 중국에서 800여 만명이나 이용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서비스 중단 이유에 대해 나이키는 ‘경영상 이유’라고만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중국이 작년 하반기부터 시행한 개인정보보호법과 데이터보안법의 여파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 법은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만약 법을 어길 경우 최대 5000만위안(약 94억원) 또는 해당 기업이 거둔 연수익의 최대 5%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못 견디고 짐을 싸고 있다. 공유 숙박 업체 에어비앤비는 올해 7월 15만개에 달하는 중국 본토 숙박 리스트를 삭제하면서 사업을 중단했다. 중국 정부의 과도한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이유로 들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전자책 단말기 ‘킨들’ 사업을 중국에서 내년 6월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2013년 중국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어 한때 확고한 1위 사업자 지위를 차지했다. 아마존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의 IT 기업에 대한 각종 압박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중 갈등과 공급망 교란, 비용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외국 기업에 불리한 경쟁 환경 등도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 닌텐도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올리자 지난 2019년 주력 게임기인 ‘스위치’ 생산 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삼성전자는 톈진과 후이저우에 있는 스마트폰 공장과 쑤저우 PC 생산 설비 등을 철수하면서 중국 현지 법인 고용 인원을 2016년 3만7070명에서 작년 말 현재 1만7820명으로 절반 넘게 줄였다.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와 마쓰다는 코로나19로 중국 공장이 봉쇄돼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고 손해가 커지자 중국 이외 지역으로 생산 시설 이전을 고려 중이다. 일본 민간 조사 업체 TDB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올해 6월 현재 1만2706개로 2020년에 비해 940개 줄었다.

한국 기업들도 탈중국에 동참하고 있다. 2019년 중국 창저우에 진출했다가 최근 국내 유턴을 결정한 전기차 제조 업체 쎄보모빌리티 박영태 대표는 “작년엔 중국에서 차를 생산해도 석 달 정도 갖고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물류가 풀린 뒤에는 운임이 올랐다”며 “게다가 진출 초기보다 인건비도 크게 올랐고, 코로나 방역 등 각종 규제가 강화되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시장의 매력이 줄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사업의 진로를 고심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탈중국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2분기(4~6월) 중국에 신규 진출한 한국 기업은 34개에 그쳐 중국 진출이 본격화된 1992년 1분기(23개) 이후 30년 만에 가장 적었다.

◇중국 채권·주식 내던지는 ‘자본시장 런’

자본시장에서도 외국인의 중국 탈출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올 들어 지난달 26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는 중국 증시(상하이·홍콩 포함)에서 13억위안(약 2450억원) 순매도 중이다. 지난해 외국인이 중국에서 사들인 주식이 팔아 치운 주식보다 4322억위안(약 81조원) 많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지난달 시진핑 주석이 20차 전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한 직후 5일간 외국인 투자금 383억위안(약 7조3100억원)이 순유출되는 ‘패닉 셀’이 벌어졌다. 2015년 이후 양회(兩會)나 전당대회 등 중국 주요 정치 행사(총 10여 차례) 직후에 이렇게 큰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채권시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중국 국채는 8월 2조3300억위안(약 438조원)에서 9월 2조2900억위안(약 430조원)으로 줄었다. 영국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깊고 구조적인 문제들이 중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본다”며 “자금 유출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중국 투자 자본 유출 규모가 지난해 1290억달러에서 올해 3000억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중국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경기 전망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이 3%대 초·중반에 그쳐 중국 정부의 목표치 5.5%에 크게 미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중국 주식에 대한 전망을 ‘완만한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췄고,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은 중국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운용 규모가 987억달러(약 135조원)가 넘는 미국 텍사스 교직원 퇴직연금도 중국 투자 비중을 35%에서 17%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

◇자국민 출국 통제 강화한 中정부

기업과 함께 사람들도 중국을 떠나고 있다. 1980년대 여행 차 중국을 방문했다 19년간 눌러살며 중국에서 가족까지 꾸렸던 커 깁슨 전 상하이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임기를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처음에 중국에 왔을 땐 낙관주의와 개방성, 호기심이 넘치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점점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고 했다. 중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상하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010년 20만8000명에서 2020년 16만300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베이징 거주 외국인도 10만7000명에서 6만3000명으로 감소했다. 미국과 글로벌 리더십을 다투는 G2 국가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한 숫자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외국인 비율은 서울이나 도쿄에 크게 못 미치고, 캄보디아나 라오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인 중에도 장기간의 코로나 봉쇄와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껴,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바이두 등 중국 포털에서는 ‘이민’ 검색 수가 수백배 늘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윤학(潤學·룬쉐)’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윤’의 중국어 발음이 도망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run’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중국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일부 부유층은 중국 탈출의 희망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 게임 업체 ‘XD 네트워크’의 황이멍 회장은 지난 6월 자신의 가족을 중국에서 이주시킬 계획이라고 직원들에게 알려 중국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회사 측은 황 회장의 이주가 사생활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중국 정부의 규제가 그의 이주에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서는 패밀리 오피스(부유층 가족의 자산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싶다는 중국 부유층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중국인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 수는 2020년 말 400개에서 지난해 700개로 증가했다.

이런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여긴 중국 당국은 자국민의 해외 출국을 더 엄격히 관리하기 시작했다. 중국 이민관리국은 지난 5월 중병 치료나 간호, 구호 물품 운송, 원자재 확보 등 중국 당국이 인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때만 출국 허가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엑소더스일까, 호들갑일까

기업과 돈과 사람이 동시에 중국을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서구 매체들은 ‘차이나 런’ ‘차이나 엑소더스’ 같은 용어를 동원해 가며 이 현상을 눈여겨보고 있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런 용어가 매우 과장됐다는 반론도 나온다. 일부에서 나타난 현상을 마치 전부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가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기업 620여 곳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중국으로부터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올해 11%에 불과했다. 지난해(9%)보다는 2%포인트 높지만, 2019년(15%)보다는 낮다. 일본 대외무역기구가 올해 초 중국에 있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도 사업을 축소하거나 제3국으로 옮기겠다는 곳은 3.8%에 불과했고, 오히려 41%는 사업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센터 소장은 “세계 500대 기업인 삼성전자나 테슬라, 애플 같은 회사가 철수한다면 그야말로 중국 탈출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며 “조그만 중소기업들이 중국에서 떠났다고 해서 중국 탈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액(FDI)이 증가한 것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중국에 대한 FDI는 1조37억6000만위안(약 196조877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늘었다. 지난 2019년 중국 상하이에 최대 50만대 생산 규모 전기차 공장을 세운 테슬라는 지난 5월 상하이 공장 인근에 제2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BMW도 영국 옥스포드에 있는 미니(MINI) 전기차 생산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BMW는 중국 창청자동차와 합작으로 약 1조원을 투입해 장쑤성에도 공장을 건설 중이다.

전병서 소장은 “중국의 연간 자동차 판매 대수가 2600만대로 미국(1600만대)보다 큰데, 이런 시장을 포기할 기업은 거의 없다”라며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듯 시진핑 집권 3기 출범 후 서방 정상 인사로는 처음으로 지난 4일 중국을 찾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중국은 독일과 유럽의 중요한 경제·무역 파트너”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순진한 행보”라는 비판을 일축했다.

내·외국인의 중국 탈출도 분위기로 감지되는 건 사실이지만 수치상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민에 대한 욕구가 증가한다고 해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지만수 한국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중국 탈출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며 “아직은 서구와 대립하는 중국이 타격을 입었으면 하는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마냥 느긋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 대한 거부감을 무작정 내버려둘 경우 중국 탈출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의식해 외국 기업에 대한 당근책을 잇따라 꺼내들고 있다. 중국 6개 부처는 중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도 중국의 법률·규정에 따라 중국 기업과 동등하게 각종 지원 정책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지난달 25일 발표했다. 중국 인민은행과 증권감독관리위원회도 외국 기업의 증시 상장과 투자를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은 해외 입국자의 시설 격리 기간을 기존 7일에서 닷새로 줄였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은 “코로나 봉쇄 정책을 곧바로 풀기는 어렵다 보니 중국 정부도 애간장이 타는 상황임은 분명하다”며 “내년 초쯤에는 제로 코로나 정책도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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