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상장기업들 줄줄이 파산·매각·적자… ‘IPO 붐’의 몰락

성유진 기자 2022. 11. 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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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꽁꽁 얼어붙은 IPO시장

영국의 유명 온라인 가구 업체 ‘메이드닷컴’은 최근 자체 판매 사이트를 닫고 사업을 접었다. 작년 6월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7억75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상장한 지 16개월 만이다. 창업 13년 차인 이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수혜를 입은 작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63% 급증하자 곧바로 기업공개(IPO)에 나섰다. 하지만 올 들어 수요 감소와 배송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주가가 공모가의 1% 아래로 추락했다. 결국 지난달 파산을 신청하며 회사가 산산조각 났고, 브랜드와 지식재산권 등만 340만파운드에 영국 대형 소매 업체 넥스트에 팔렸다. 영국 언론들은 “‘새로운 이케아’를 꿈꿨던 가구 소매 업체의 운명이 1년 만에 반전됐다”고 평했다.

일러스트=김영석

코로나 팬데믹 동안 앞다퉈 IPO에 나섰던 기업들이 올 들어 줄줄이 몰락하고 있다. 시장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을 등에 업고 상장에는 성공했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아 결국 주가가 급락하거나 투자금을 다 까먹고 파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IPO를 진행한 상당수 기업이 올해 주식시장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이는 다시 IPO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주가 급락하고 파산까지… IPO 붐의 몰락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은 작년 11월 상장하며 공모가를 78달러로 책정했다.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30% 급등했지만 현재 주가는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의류 구독 모델로 주목받은 ‘렌트더런웨이’ 역시 작년 10월 IPO 이후 1년 만에 주가가 공모가의 90% 아래로 추락했다. 핀테크 기업 ‘로빈후드’(상장일 2021년 7월), 대체 식품 업체 ‘오틀리’(2021년 5월), 음식 배달 업체 ‘도어대시’(2020년 12월) 등도 마찬가지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딜로직데이터에 따르면, 2019~2021년 미국 시장에서 IPO로 최소 1억달러 이상을 모은 400여 기업 가운데 지난달 주가가 공모가보다 낮아진 곳은 76%에 달한다. 최근 상장한 기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르네상스IPO ETF 가격도 올해 들어 절반가량 폭락했다.

헐값에 사모펀드나 대형 업체에 인수되는 일도 잦다. 작년 9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회사 ‘포지락’은 지난달 사모펀드 토마브라보에 23억달러에 팔렸다. 포지락 주가는 한때 공모가(25달러)의 두 배 수준인 47달러까지 올랐지만, 이번 인수 가격은 주당 23달러로 공모가보다 낮다. 네이버가 지난달 사들인 중고 거래 플랫폼 ‘포쉬마크’ 역시 인수 가격이 작년 1월 IPO 당시보다 거의 60% 낮게 책정됐다. FT는 “지난 2~3년간 상장했던 많은 기업이 이제 (매각과 관련해) 사모펀드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주머니가 두둑한 경쟁사들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팩(SPAC·기업 인수 목적 회사)을 통해 우회 상장했던 기업들의 경우 파산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스팩은 비상장사와 합병해 증시에 데뷔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 회사로, 팬데믹 기간 빠르게 자금을 끌어모으고 싶어하는 업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애플 임원 출신 론 존슨이 만든 온라인 소매 업체 ‘인조이 테크놀로지’는 작년 10월 스팩 합병을 통해 나스닥 입성에 성공했지만 8개월 만에 현금을 거의 소진하면서 지난 6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전기차 스타트업 ‘일렉트릭 라스트 마일 설루션’ 역시 작년 6월 14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으며 우회 상장한 지 1년도 안 돼 파산을 선언했다.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이나 고객 기반 없이 코로나 반짝 특수나 장밋빛 전망을 앞세워 무리하게 상장한 것이 화를 불렀다는 분석이 많다. 성장성을 인정받아 최근 IPO에 나섰던 기업 상당수는 올 들어 경기가 둔화하자 늘어나는 적자를 감당 못 하고 있다. 식물성 우유로 유명한 오틀리는 지난 3분기 순손실이 1억79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4120만달러)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고, 음식 배달 플랫폼 도어대시 역시 3분기 적자가 2억9500만달러로 작년에 비해 거의 3배로 확대됐다. 금리 인상도 신생 기업들엔 치명적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EY의 레이철 게링 미주 IPO 부문 책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성장성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올해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처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이 식으면서 신규 IPO 건수도 빠르게 줄고 있다. EY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전 세계 IPO 건수는 992건, 조달 금액은 1460억달러로 전년 대비 각각 44%, 57% 감소했다. 특히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대외 변수 영향이 컸던 미주와 유럽 시장 침체가 심했다. 미주 지역 IPO 건수는 전년 대비 72%, 조달 금액은 94% 줄어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인스타카트, 레딧 등 올해 IPO를 준비했던 기업들도 상당수 내년 이후로 계획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IPO 열기도 시들

국내 IPO 시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해 IPO를 통해 4조원 넘는 돈을 조달한 크래프톤은 최근 주가가 공모가(49만8000원)의 절반 아래로 반 토막 났다. 작년 IPO로 조 단위 금액을 조달한 카카오뱅크도 최근 주가가 공모가를 한참 밑돌고 있다.

‘공모주 투자=대박’ 공식도 깨졌다. 지난해 증시가 뜨거울 때는 신규 상장 종목의 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를 찍는 ‘따상’이 흔했지만, 올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공모가 대비 시초가 수익률은 2020년 53.3%, 2021년 54.9%에서 올해 35.8%로 낮아졌다. 올해 IPO 대어 중 하나였던 쏘카는 지난 8월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보다 낮게 형성돼 현재는 35%가량 하락한 상태다.

IPO 시장에 한파가 불어닥치자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 SK쉴더스, 원스토어, CJ올리브영, SSG닷컴 등 굵직한 기업들이 올해 상장 계획을 철회하거나 내년 이후로 미뤘다. 지난 8월과 9월 각각 상장예비심사를 마친 컬리와 케이뱅크는 몸값이 당초 기대치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상반기에는 그나마 대기업·중견기업들의 물적 분할 상장이 있어 비교적 선방했지만 하반기에는 이조차 어려워지면서 본격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며 “기준 금리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란 신호가 나오고 주식시장이 회복세를 보여야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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