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전례 없는 식량난…주민들 아직도 하늘만 원망[이집트 COP27에 가다]

김혜리 기자 2022. 11. 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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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시달리는 이집트
이집트 기자에서 작은 옥수수 농장을 운영 중인 사예드가 해수면 상승으로 소금기를 머금게 된 땅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전쟁 여파 겹쳐 식자재 품귀
하루 수입 3000원 노동자
“300원짜리 콩튀김도 못 먹어”
나일강 마르고 경작지 줄어
기후위기 영향 직접 받지만
정작 농민들은 개념 잘 몰라

“닭구이부터 먹어요. 마침 어제 사 온 터라 참 다행이죠?”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만니(26)는 손님을 맞이하는 건 오랜만이라며 기자에게 닭고기부터 권했다. 이날 저녁 식탁에 올라온 요리는 닭구이, 밥, 오이와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 냉동 미트 파이. 평소의 만니라면 한 번에 다 차리지 않았을 음식들이다.

특히 닭구이는 남편의 월급날에나 만나볼 수 있는 요리다. 만니는 “원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고기를 먹었는데 이젠 3주에 한 번 정도 먹는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너 달 전 25파운드에 불과했던 생닭 한 마리가 지금은 45파운드다. 만니는 “0.5파운드였던 빵도 이젠 1파운드”라면서 모든 식자재값이 두 배로 뛰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만니가 차려준 저녁 식사. 3주에 한 번 먹는 고기가 올라와 있다.

■고기 끊고 아침 거르고

올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의장국인 이집트는 전대미문의 ‘식량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거나 월급이 줄어든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두 배로 오른 식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이집트는 밀 82%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왔는데, 최근 전쟁으로 양국의 밀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서 밀가루 가격은 44%나 급등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집트인은 불어나는 식비를 감당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거나 먹을 것을 줄이고 있다. 만니의 남편 무함마드(29)는 “살림이 빠듯해지면서 ‘투잡’ ‘스리잡’까지 뛰는 사람들이 흔해졌다”며 자신도 낮엔 공항에서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사진 보정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버 기사 일을 시작한 친구가 부수입이 꽤 생겼다면서 자신도 밤에 우버 일을 할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무함마드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이날 카이로에서 만난 안나(30)는 차 공장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안나의 하루 수입은 50파운드(약 3000원)에 불과하다. 그는 몇 달 전 고기를 끊은 데 이어 지난주부터는 아침에 주로 먹던 ‘타메야(콩 튀김)’ 요리까지 사 먹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흔한 길거리 음식인 5파운드(약 300원)짜리 타메야 샌드위치마저 한 끼 식사로 삼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기후위기 피해 인식은 ‘아직’

이미 버거운 식량난에 기후위기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는 이들도 있다. 카이로 인근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 도시 기자에서 작은 옥수수 농장을 운영 중인 농부 사예드(48)는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지난해 옥수수 수확량이 평년보다 30%나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 불볕더위로 옥수수가 많이 말라 죽었다”면서 손바닥만큼 작은 옥수수들을 보여주었다.

물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최근 기온 상승으로 이집트의 주요 물 공급원인 나일강은 빠르게 증발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이 땅속으로 침범하면서 토양 염분까지 증가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까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예드가 원래 가축들에게 먹이는 ‘알파알파’ 풀을 심던 밭도 소금물이 스며들어 열쇠로도 쉽게 안 긁힐 정도로 단단해졌고, 곳곳엔 하얀 소금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사예드는 “땅이 나한테 싸움을 거는 것 같다. 절망적이다”라고 말했다.

소금을 머금어 돌처럼 단단해진 땅.

이렇듯 기후위기는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정작 기후위기란 개념은 이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예드는 소금물이 밭에 미치는 영향과 이상고온이 옥수수를 말라 죽게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탄소배출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점은 모르고 있었다. 이는 이집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단에서 온 환경운동가 와탄 모하메드(22)는 “수단은 해마다 엄청난 폭우, 가뭄, 이상고온 현상을 겪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냥 자연이 낳은 재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카이로 | 글·사진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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