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기금 시급…비행기 승객에게 1달러라도 걷자”

김혜리 기자 2022. 11. 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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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변화 특사 지낸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기온 상승 1.5도 이내’는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
각국 지도자들 명심해야
기후위기, 약자에게 더 가혹
에너지 ‘정의로운 전환’ 필요

유엔 기후변화 특사를 지낸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손실과 피해’ 문제가 의제로 채택된 것을 환영하면서 “모든 비행기 이용승객에게 1달러를 매기는 방식으로라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COP27이 열리고 있는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로빈슨 전 대통령을 만났다. 세계 지도자들의 모임인 ‘더 엘더스’의 회장을 맡고 있는 로빈슨 전 대통령은 수십년간 ‘기후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기후변화’란 단어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기후위기’나 ‘기후재난’이란 표현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로빈슨 전 대통령과의 일문일답.

- COP27 일정이 반환점을 돌았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11일 샤름엘셰이크에 도착해 보니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한 약속을 무를 수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선제조치로 글로벌 대기업과 시민사회단체, 과학자들과 함께 각국 정부들이 국가 목표를 1.5도에 맞출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 1.5도는 ‘목표’가 아니라 ‘한계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넘어서면 안 되는 ‘티핑포인트’ 즉 마지노선이다.”

- COP27에선 개도국의 피해와 보상 문제를 다루는 ‘손실과 피해’ 문제가 공식 의제로 채택됐다.

“선진국들은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2025년까지 기후변화 적응기금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던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COP에선 ‘손실과 피해’ 의제에 이목이 쏠려 다행이지만 그 이행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지금은 대출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개도국에 돈을 빌려주고 있지만, 개도국은 돈을 빌려 재해를 복구해도 계속 재해에 또 타격을 받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은 시스템이다. 지금 당장 손실과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다. 나는 ‘전 세계 비행기 이용승객당 1달러씩 매기면 거의 40억달러를 순식간에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기간 내에 기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본다.”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도 힘든 상황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런 기후기금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나.

“오늘 아침 유럽연합(EU) 국가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해 봤는데 다들 손실과 피해에 관해 지원할 뜻이 있었다. ‘보상’과 같이 민감한 단어만 직접 꺼내지 않는다면 그래 보인다. EU 시민들도 지금 에너지 가격 급등, 식비 상승 등 각종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지 못했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재난이 커질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제대로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 대통령은 최근 탄소중립이 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도자들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시아의 미래는 이미 끔찍해 보인다. 올해 파키스탄, 인도, 중국에서 일어난 각종 기후재난들만 봐도 그렇다. 지도자라면 과학을 무시해선 안 되고, 1.5도 한계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정책적으로 후진할 것이라면 국민한테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당신은 저서 <기후정의> 등을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자주 언급해 왔다. 아일랜드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가 있을까.

“아일랜드는 원래 ‘이탄(peat)’이나 ‘토탄(turf)’이라는 화석연료를 쓰던 나라였다. 이 연료들은 석탄만큼 화력은 못 내면서 탄소배출량은 더 많아 석탄보다 더 나쁜 화석연료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탄을 퇴출하기로 하면서 이탄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400여명에게 이탄 습지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을 맡기기로 했다. 재교육을 시행했고 ‘정의로운 전환 감독관’도 따로 두었다. 제일 중요한 건 정의로운 전환에 드는 비용의 75%가 정부 기금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고 이들이 새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과정에선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돈을 빌려 빚진 상태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하려 한다면 제대로 안 될 수밖에 없다. 이 경험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도 공유했다. 세네갈도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프로그램(JETP)’을 통해 가스에서 수소로 전환하고 싶어 한다.”

- 기후위기가 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나는 ‘기후정의’를 말하면서 여러 계층의 불평등에 대해 말한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내뿜는 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4%도 안 되지만, 가난한 국가들은 훨씬 더 심하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기후위기로 고통받는다. 성별에 따른 불평등도 있다. 직업훈련도 제대로 못 받는 등 다양한 권리를 박탈당한 여성들은 기후재난으로 타격을 입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여력이 현저히 낮다. 그리고 여성들은 이렇게 기후위기를 논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권한도 거의 없다. 이번 COP27 정상 사진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몇 안 되는 여성 지도자 중 한 명인 미아 모틀리 바베이도스 총리다.”

샤름엘셰이크 | 글·사진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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