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다루는 의술에 대한 최고의 경외와 예우… 예술이 된 의술

김예진 2022. 11. 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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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SP ‘아르스 롱가’展
푸른문화재단·청년의사 공동 주관
예술과 의술 접목한 공예 장신구 등
작가 25명 신작 150점 25일까지 전시
구혜원 이사장 “치유와 위로 공통점”

한 번 겪는 것도 힘든 타인의 죽음을 수도 없이 목도하기. 매일 생사의 기로에서 죽음과 싸워 물리치기. 고통의 현장에서 최후의 목격자가 되기. 아픈 이의 고통을 들어주고 덜어주기. 의술을 행하는 생활인의 일상이 전투인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이들이 생명 연장과 고통 없는 삶을 위해, 자연의 법칙에 맞서는 인류 문명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투사임을 떠올리면, 이들의 일상 전투는 숙명이다.

그런 숙명에 대한 경외를 담았을까.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아르스 롱가, 비타 브리비스(Ars Longa, Vita Brevis: 의술에 이르는 길은 멀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을 남겼다. 기원전 460년, 고대 그리스의 의사였던 그의 말은 이후 2500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구전됐다. 다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의역인가 싶은 오역으로.
왼쪽부터 김아랑 ‘정신의학 연구소’(2022), 이재익 ‘소화기내과’(2022), 오화진 ‘정형외과’(2022).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에 위치한 갤러리에스피(SP)에서 전시 ‘아르스 롱가(Ars Longa)―의술과 예술: 인간의 치유를 향한 끝없는 길’이 열리고 있다.
권슬기, 김아랑, 김유정, 김한나, 문연욱, 민준석, 박소영, 박정혜, 박지은, 백한승, 서예슬, 성코코, 송지원, 신혜정, 오화진, 윤상지, 윤지예, 이선용, 이미리, 이윤희, 이재익, 전지현, 조민정, 최윤정, 테즈킴이 참여했다. 이들 젊은 작가 25명의 신작 약 150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푸른문화재단이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정기 기획전이다.
이윤희 ‘의철학연구소’(2022).
올해 전시 주제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시의성 때문이다. 의술은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도무지 끝이 없어보이는 기나긴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의 터널 속에서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을 알리는 빛이 됐다. 우리는 의술의 힘을 빌려 이 유례없는 전염병을 가장 잘 극복하고 있는 뛰어난 공동체로 세계적인 추앙을 받기도 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의학의 말과 의술, 조언을 소홀히 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전염 속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비극적 참사로 주저앉아 절망하는 사람들 틈에서 이들이 뛰고 또 뛰는 모습을 비현실적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의술을 행하는 사람들의 집중과 지침이 신문지상과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노출됐다. 무엇이든 최고의 경지에 올랐음을 예우하고 존중하며 칭할 때 우리는 “예술이다”란 말을 쓴다. 그 어느 때보다 의술에 절박하게 기대고 있는 지금, 이번 전시는 의술에 최고의 예우를 하는 방법으로 의술 그 자체를 예술이라 부르는 의도적 오역을 택했다.

작가들은 저마다 의술에 대한 최고의 경외와 예우를 담은 듯한 작품을 내놓았다. 의학사적 측면에서 주술적 치료와 신화, 민간요법에 관한 작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안과, 피부과 등 전문과에서 다루는 신체 기관이나 의료 기구 및 약품을 구현한 작품들이다. 분야 역시 다양해 공예 장신구, 가구, 설치 작품 등이다.

푸른문화재단은 특별히 올해 전시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의료 전문지 ‘청년의사’와 공동 주관해 전시를 개최했다.
테즈킴 ‘소아청소년정신과’(2022). 푸른문화재단 제공
전시 서문에서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이 유명한 문장은 실은 고대 그리스어 ‘아르스’를 ‘테크네(techne·기술)’가 아닌 ‘아트(Art·예술)’로 오역해 탄생한 것으로, 본래 인간을 치료하는 기술인 ‘의술’을 익히고 베푸는 길은 끝이 없다는 의미였다. 근대에 이르러 아르스가 점차 ‘미(美)를 규범이나 목표로 하고 있는 활동’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면서 근사하게 오역된 셈”이라며 “‘아르스 롱가’의 중첩된 의미처럼 의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전시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 기획자이기도 한 구 이사장은 “고대로부터 의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다루는 기술로서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공헌해왔다. 히포크라테스 이래 의료인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질병과 사고 현장에서 소명 의식을 갖고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며 의술의 길을 걸어왔다. 도처에 질병이 도사리는 시대에 자신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의료인을 기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의술과 예술 모두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삶의 풍요를 더하는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의술과 예술은 ‘완성’이란 없다는 점마저 닮아, 인류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25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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