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고구마 투쟁 실체 밝히려 참여자 30여명 인터뷰했죠”

정대하 2022. 11. 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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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전남대 윤수종 교수

함평 고구마 투쟁 참여 농민 등이 1978년 4월 광주 북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적확하게 연구하기 위해 투쟁 당사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사실 확인을 거치며 고쳐갔어요.”

‘함평 고구마 사건’을 정리해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투쟁>(심미안)이라는 책을 펴낸 윤수종 전남대 교수(사회학)는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농민운동사의 새 장을 연 함평 고구마 투쟁을 역동적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함평 고구마 투쟁은 1976년 11월 함평군 단위농협이 7300여 농가에게 전년보다 비싼 값에 전량 수매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불씨가 됐다. 농민들은 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피해 보상을 요구했고, 1978년 4월 단식농성을 통해 그해 5월 보상과 사과를 받아냈다. 투쟁은 햇수로 3년(만 1년6개월)이 걸렸다. 윤 교수는 “함평 농민들은 달콤한 협상을 거부하고 보상과 사과를 받겠다며 끝까지 밀어 붙였다”고 말했다. 한국농민운동사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윤 교수가 함평 고구마 투쟁사를 밀도 있게 연구하게 된 것은 그가 쓴 함평 고구마 투쟁사 논문이 계기가 됐다. 윤 교수는 구술 자료 등을 바탕으로 나름 철저하게 준비해 2021년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투쟁의 전개 과정’이라는 논문을 한 잡지에 투고했다. 그런데 이 논문을 읽었던 관련자 몇 분이 문제를 제기해, 윤 교수는 광주 ‘민주의 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함평 고구마 투쟁의 주역 중 한 명인 서경원씨는 “논문이 너무 ‘자주적 농민운동 방향’에서 정리됐다”고 수정을 요구했다.

70년대 한국 농민운동 상징적 사건
1년6개월 투쟁으로 피해보상 따내
지난해 논문 이어 최근 단행본도 내
농민들과 가톨릭 교계 갈등도 짚어
“여성 농민들 참여 현황 보완하고파”

‘제국’ ‘분자혁명’ 등 다수 사상서 번역

윤 교수는 이들과 대화한 뒤 연구 방향을 새롭게 잡았다. 그는 2021년 8월부터 올 4월까지 1년간 관련자 30여명을 직접 또는 전화로 면담했다. 면담자는 서경원, 최성호, 모영주, 김양혁, 이석현, 윤종형, 임재상, 이강, 조계선, 박형선, 조봉훈, 박병기, 김성룡, 문경식, 박석면, 나상기, 이종옥, 김현장, 황광우(메일), 배종열, 이우재, 김상윤씨 등이다. 윤 교수는 “기록으로 정리된 내용을 확인하고 기록되지 않는 내용을 추가 설명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광주 북동성당 안 농성장 모습.

면담 내용엔 그간 당사자들조차 드러내기를 머뭇거렸던 사안도 포함됐다. 예를 들면, 당시 큰 틀에서 농민운동을 지지했던 가톨릭 교계에서 투쟁을 일시 중지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윤 교수는 “당시 가톨릭 교회 쪽에서 기도회를 갑자기 중단한 배경 등을 파헤쳐 숨기지 않고 가감 없이 책에 기록했다”고 말했다. 당국, 경찰, 농협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운동 핵심세력이 포섭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책은 기존의 관련 연구보다 내용이 훨씬 풍성하다. 윤 교수는 ‘기도회-단식투쟁-보상’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정체와 확산 과정을 역동적으로 조감했다. 그는 “함평 고구마 투쟁은 그간 가톨릭농민회의 지도로 진행된 투쟁으로 인식됐지만, 농민들과 가톨릭농민회, 농협·경찰·정보기관 등이 갈등을 겪으면서 전개된 사건”이라며 “상위조직 및 외부세력이 활력을 불어넣고 저항에 합류하면서 당국과 농민들 간에 타협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왜, 함평에서 역동적인 사건이 일어났을까. 윤 교수는 “함평 고구마 투쟁 전 1975~76년 함평에서 농민운동이 활발했다”며 “초기엔 함평지역 농민운동을 기반으로 투쟁이 성장했고, 이후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가 힘을 실어줬으며, 단식 투쟁 시기엔 전국의 사회활동가들이 결집했다”고 말했다. 함평 농민의 돌파력이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으로 확장한 셈이다. 그는 “여성 농민의 참여 상황을 제대로 담지 못해 아쉽다. 향후 이들을 인터뷰하게 되면 보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윤수종 교수 캐리커처.
단식 농성장의 구호들.

농촌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10여년 전 <농촌사회학> 교재를 만들면서 농민운동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뒤 농민운동 관련 논문을 썼다. 전남도에서 낸 <민주장정 100년, 광주·전남지역사회운동사> 가운데 ‘농민운동편’을 맡아 정리했다. 1980년대 후반 ‘와이엠씨에이(YMCA)농민회’가 주도한 운동을 정리한 <해남수세투쟁>(2020·심미안)도 냈다. 그는 “강진, 무안, 해남 등 지역별 농민운동을 정리해 알리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이탈리아 아우토노미아(자율주의) 사상 등 서양의 이론들을 한국에 소개했고, 소수자 문제, 성과 욕망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도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는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 <욕망과 혁명>, <자율운동과 공동체>, <농촌사회제도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제국>(네그리), <분자혁명>(가타리), 라이히(<오르가즘의 기능>)등이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서경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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