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에 산다는 착각

한겨레 2022. 11. 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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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고향 서울에 들를 때마다 지인들에게서 듣는 두가지 불평이 있다.

아파트는 풍수지리의 가장 높은 가치인 배산임수를 실현할 수 없었지만, 낮은 가치였던 남향은 어렵지 않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아파트가 남향으로 지어졌으니 모든 사람이 남향의 이점을 누리며 살게 됐을까?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는, 남쪽에 거실과 안방이, 반대쪽에 두개의 작은 방과 주방이 있는 4인 가족 기준 32평 '표준 평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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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

가끔 고향 서울에 들를 때마다 지인들에게서 듣는 두가지 불평이 있다. “올해 여름이 가장 더운 것 같아” 그리고 “요즘 경기가 제일 안좋은 것 같아”

매년 그해가 가장 더울 리도, 그해 경기가 제일 나빴을 리도 없을 텐데 항상 올해가 제일 문제라고 한다. 눈앞에 놓인 것이 더 중요하고 심각해 보인다. 인간의 지각은 그만큼 미시적이고 즉시적이다.

한국인의 남향집 선호는 유명하다. 아파트 신규 분양광고에 ‘전 세대 남향’이란 문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미분양 폭발력이 큰 아파트 시장에서, 건설회사는 소비자가 좋아하는 조건을 최대한 반영해 집을 지어야 한다. 그중 남향은 신성불가침 영역에 해당한다. 이렇게 당연하게 취급되는 남향 선호는 당연히 오랜 전통으로도 느껴진다. 남향 선호가 유구한 한국의 주거문화에서 황당할 정도로 최근의 것이라는 사실은 상상하기 힘들다.

예로부터 한국의 집은 무덥고 습한 여름바람과 차고 건조한 겨울바람에 적응해야 했다. 그런데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물과 습기에 약한 목재뿐이라, 우리 조상들은 지혜를 발휘해야 했다. 많은 비에 목재로 만든 집을 보호하기 위해 집보다 훨씬 큰 기와지붕을 덮었고, 습기에 약한 황토와 문풍지로 마감된 내부를 건조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 비책이 바로 오랜 경험이 쌓여 정리된 게 풍수지리다. 풍수지리가 찾은 최상의 해결책은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이른바 배산임수였다. 그런 지형이면 잔잔한 공기 흐름, 즉 항구적인 대류현상이 발생하기에 바람으로 습기를 말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좁은 나라에 뒤는 높고 앞에 물이 있으면서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땅이 충분할 리 없었다. 근대 들어 집 수요가 많아지자, 전통적 풍수지리설에선 크게 치지 않던 보완적 개념, ‘향’이 등장한다. 지붕 처마가 길게 나오는 한옥에서는 바람에 비해 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서향이 여름에 덥다 해도 지붕 처마가 가려 주니 큰 문제는 아니었고, 한옥의 모든 방은 직사광이 아니라 마당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에 의지하는 구조였기에 향에 강하게 구속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전통 가옥들이 창밖 경치나 경사 흐름 같은 지형에 순응하는 식으로 지어져 온 이유다.

요즘처럼 남향집이 도시를 지배하게 된 데는 아파트가 큰 역할을 한다. 아파트는 풍수지리의 가장 높은 가치인 배산임수를 실현할 수 없었지만, 낮은 가치였던 남향은 어렵지 않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배산임수를 포기하고 남향을 선택할 정도로 사람들은 남향에 집착했다. 70년대 서울 강남 한강변에 들어선 고급아파트들은 멋진 한강 전망도 북쪽이란 이유로 포기하고 옆 아파트 뒷면밖에 안보이는 남향을 선택할 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아파트가 남향으로 지어졌으니 모든 사람이 남향의 이점을 누리며 살게 됐을까?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아파트는, 남쪽에 거실과 안방이, 반대쪽에 두개의 작은 방과 주방이 있는 4인 가족 기준 32평 ‘표준 평면’이다. 일전에 인테리어 설계를 의뢰한 한 가족에게 각자 방에서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타임워치로 측정하도록 한 적이 있다. 측정 결과는 그곳에 사는 사람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남쪽 안방과 거실은 해가 진 뒤에나 사람이 들기 시작했고, 심지어 가장 좋은 자리의 넓은 안방은 밤 10시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직접 빛이 들지 않는 침침한 북쪽에 자리한 주방과 아이들 방은 오후 내내 형광등을 켜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밝은 남향 빛의 혜택을 입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티브이(TV)와 소파 그리고 더블침대였다. 그들은 남향집이 아니라 북향집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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