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창조한 신에 대하여: 인도에서의 경험

한겨레 2022. 11. 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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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환상타파]

촛불행동 주최로 지난달 22일 저녁 서울 시청역 일대에서 열린 제11차 전국집중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손팻말과 촛불조명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96년 처음 인도라는 나라를 가봤다.

그해 북한에서 잠수함이 넘어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냉소적이었던 나는 피시(PC)통신 천리안에 글을 하나 올렸다가 그게 <조선일보> 사회면을 장식하고 며칠 뒤 경찰에 연행됐다. 만약 <한겨레>에서 반론기사를 내주지 않았다면, 진짜 일이 커졌을 수도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6년간 사귄 여자친구가 떠나갔다. 일련의 사건들이 내 인도행을 결정지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온 내게 인도는 참 신기했다. 선과 악,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 정치적으로도 우리 편과 적뿐인 세계관 속에서 살았기에,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도 나쁜 짓을 할 때가 있고, 악마 또한 신에게 사기나 당하는 어수룩한 존재였다. 법의 수호자라는 서사시의 영웅들도 승리를 위해 반칙을 행했다. 처음에야 무슨 신과 영웅이 저 모양이냐고 생각했지만, 다시 살펴보면 그건 그냥 우리가 사는 모습이었다.

당시는 인도 빈민구제에 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가 생존해 있었고, 많은 여행자가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으로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종의 관례였다. 여행기간 내내 인도라는 나라에 진저리치고 때로는 감동하면서 떠돌던 사람들은 이 이상한 나라와의 작별을 테레사 하우스에서 며칠간 봉사하며 마무리했다.

어느 날 밤, 리튼호텔에 가면 한국인 독지가가 봉사자들에게 스테이크를 사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인도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란 호사 중 호사고, 리튼호텔은 허름한 도미토리만 가득한 이 골목 유일한 4성 호텔.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기를 사준다는 이는 <조선일보>에서 취재 온 기자였다. 테레사 하우스를 취재하면서 한국인 봉사자가 열댓명 있다는 걸 알고 남은 경비를 털기로 한 것이다. 당시 인도 물가는 정말 저렴했기에, 그 인원이 모두 스테이크를 먹어도 미국 돈 200달러면 충분했다.

불과 몇달 전 조선일보로 인해 경을 칠뻔한 나는 들소처럼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뜯어말리고 욕하고 씩씩대는 와중에 싸움은 술자리로 넘어갔다.

어릴 땐 북한 공산당이, 20대 때는 고위관료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뿔 달린 악마였지만, 막상 이야길 해보니 나의 증오가 엇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만, 혹은 내 진영 사람들만 애국하는 줄 알았다. 술이 몇순배 돌고 취기가 오를 즈음 슬그머니 얻은 깨달음은 우리는 어쩌면 각자 저들로 인해 세상이 망해버린다는 두려움에 잠식됐던 것은 아닐까, 였다.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은 없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애국이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건 좀 슬펐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 승려가 ‘빨갱이는 다 죽여도 돼’라는 팻말을 들고 보수집회 단골 연사로 나왔다. 그때 혀를 끌끌 차며 그들의 증오를 우려하던 사람이 ‘비행기가 떨어지길 빈다’고 할 때 아찔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은 선과 악만 존재하는 종교적인 나라가 됐다. 도구에 불과한 정치지도자를 숭배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게 죽으라는 저주를 스스럼없이 하며, 그럴수록 헌금과도 같은 후원금이 생기는 곳 말이다. ‘신’이라는 이름만 없을 뿐이다. 오해하지 마라. 어느 한쪽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불과 70여년 전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악마화하며 서로 죽였다. 모든 일에 역사와 과거사를 꺼내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겪었던 가장 비극적인 역사를 망각하는 것은 안타깝다.

그런 몇몇 종교인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신념 아래, 아합왕을 꾸짖는 엘리야의 마음으로 그랬을지 모른다. 그분들에게 인도에서 힌두교 수행자계를 받은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인도에는 ‘애인을 사랑하듯 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다. 망각하지 말자. 우리의 신은 다르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신은 그럴수록 상식적인 대화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리라는 것을.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자유통일당 등이 개최한 ‘자유통일 주사파 척결 국민대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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