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8년 전 세월호와 지금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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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모든 죽음은 사회적이다. 아이가 통학버스에 치여 죽었어도, MT에서 천장이 무너져 죽었어도, 밤늦은 길에서 폭행당해 죽었어도, 집에서 학대로 죽었어도. 어느 하나 사회구조와 무관한 죽음이 없고,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는 죽음은 없으며, 그리하여 사회가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죽음이란 없다.'
사회적 책임공유와 치유 노력, 재발 방지와 안전한 사회를 위한 공동체적 다짐은 공론의 중심부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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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정치화로 퇴색된 세월호의 교훈
같은 정치적 궤적을 밟아가는 이번 참사
최대한 책임 묻고 국정조사도 감당해야
솔직히 말하자. 세월호가 불편한 이름이 된 지는 오래다. 웬만하면 입에 담기를 꺼리고, 계층과 성향에 따라서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 금기어가 돼있다. 국민 모두가 제 일처럼 애통해했던 게 겨우 8년 전이다. 영원할 것 같던 기억과 추모의 염이 잦아든 이유는 다들 아는 대로다. 정치 사안으로 변질된 탓이다.
사고 원인은 처음부터 뻔한 것이었다. 제 살 궁리만 찾은 선장 선원들, 안이한 관제센터 근무자들, 구조를 머뭇거린 해경, 과적에 화물결박비용까지 아낀 선사 관계자들, 배의 부실 증축을 도운 정치인 공무원들…. 정권을 넘나들며 수사와 조사를 거듭했어도 더 나온 건 없었다. 그런데도 정권 방조설, 국정원 개입설, 미 잠수함 충돌설, 의도적 사고 유발설 같은 온갖 정치적 주장들이 유포됐다. 책임을 면해보려는 청와대와 집권세력의 행태가 단초를 만들었다. 교훈은 실종되고 박근혜 7시간만 남았다. 세월호는 절대로 그렇게 다뤄져서는 안 될 것이었다.
당시 썼던 글을 되짚는다. ‘모든 죽음은 사회적이다. 아이가 통학버스에 치여 죽었어도, MT에서 천장이 무너져 죽었어도, 밤늦은 길에서 폭행당해 죽었어도, 집에서 학대로 죽었어도. 어느 하나 사회구조와 무관한 죽음이 없고,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는 죽음은 없으며, 그리하여 사회가 책임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죽음이란 없다.’
그런데도 이태원 참사는 어김없이 세월호의 궤적을 밟아가고 있다. 사회적 책임공유와 치유 노력, 재발 방지와 안전한 사회를 위한 공동체적 다짐은 공론의 중심부에서 사라졌다. “윤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나라.” 참사 직후 민주당 당직자의 언급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현역의원들까지 대통령 퇴진을 입에 올리면서 또 정치 사안이 됐다. 의석수로 얼마든지 가능한 국정조사를 거리서명운동으로 끌고 간 데서도 참사를 천재일우의 정치적 국면전환책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이재명 대표 리스크에 몰린 절박함에서 비롯한 민주당의 무리수야 그렇다 치자. 참사가 정치사안으로 고착화하는 것을 막을 근본적 책임은 누가 뭐래도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있다. 결과는 참혹하지만 참사의 원인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세월호처럼 음모론이 끼어들 여지도 별로 없다.
참사 직후 발 빠른 현장방문, 연이은 조문, 중앙재난안전대책회의 소집, 재발방지책 약속 등 윤 대통령의 행보는 비교적 적절해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국정 최고 담임자로서 마땅하게 책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재난 총괄책임에 경찰지휘권까지 가졌음에도 “인력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거짓말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어떻게 그 자리에 놓아두고, 심지어 재난대책TF 단장에 임명할 수 있으며, 더욱이 순방에서 돌아오면서 “수고했다”고 격려할 수가 있나. 거기에 기꺼운 듯 응답한 이 장관의 미소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 이미지를 일거에 지워버렸다.
나아가 국정쇄신 차원에서 한덕수 총리까지도 문책성 인사 대상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참사 직후 외신기자들 앞에서 농담을 한 그의 처신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책임을 가벼이 여긴 것이다. 무엇보다 한창 높아져있는 선진국가 위상을 일거에 나락으로 밀어버린 이 참사만큼 국정쇄신에 필요한 명분이 어디 있나.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도 담대하게 받아들이길 주문한다. 어느 대목에서든 머뭇거리면 정치화 공세를 차단하기 어렵다. 법적 책임을 묻는 것과 달리 정치적 책임은 최대한 확대해 감당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수습의 원칙이다. 이태원 참사마저 또다시 정치사건으로 기억되도록 놔둬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다른 해법은 없다.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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