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매물 500건 쏟아진 개포자이…"중개업소 20년만에 처음"

이석희 2022. 11.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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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 강남권 현장 가보니
내년 초 3375가구 규모의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가 입주하면 강남권 전세가가 더 하락할 것으로 중개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인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전경. <이승환 기자>

"강남에서 역전세난이라는 표현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가격을 수억 원씩 내리면 뭐합니까. 전세를 찾는 사람 자체가 없는데."(서울 서초구 반포동 공인중개사)

지난 15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내년 2월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축 브랜드 대단지 입주를 앞두고 전세를 찾는 상담이 많아질 시기지만 인근 공인중개업소 분위기는 한산했다. 인근 상가에 중개업소 10개 이상이 몰려 있었지만 손님을 맞은 업소는 단 한 곳뿐이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는 전체 3375가구인데 복수의 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전세 매물은 400~500건 수준으로 추정된다. 입주장이 열리면서 인근 단지와 비교해 수억 원 이상 떨어진 가격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전용면적 59㎡의 경우 최저 호가가 7억5000만원, 전용면적 84㎡는 11억원대다. 최근 몇 년간 강남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격이다.

A중개사는 "입주장이 열리니 집주인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다"며 "그런데도 매물은 나가지 않고 있다. 내년에 본격 입주가 시작되면 최소 1억원은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B중개사는 "더 신축이고 '초품아'(단지 내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인 단지가 더 싼 걸 감안하면 인근 단지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근 중개사들에 따르면 바로 옆에 2019년 8월 입주한 개포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면적 59㎡는 호가가 12억~13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엔 9억원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전용면적 84㎡의 경우도 2억원가량 떨어졌다.

서초구 부촌인 반포동의 대표 단지들도 역전세난을 겪고 있다. 반포동의 C중개사는 "역전세난이라는 표현이 무리가 아니다"며 "계약기간이 끝난 세입자들이 연장을 해주면 다행이지 더 싼 곳으로 나가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반포자이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 6월만 해도 22억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최근엔 호가가 13억원대로 떨어졌고 12억5000만원 급전세 매물도 있었다. 3410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현재 전세 매물이 300건 이상으로 추정된다.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역시 전용면적 84㎡가 지난 6월 22억원에 계약이 이뤄졌지만 현재 호가는 14억원대다.

'불패지'로 여겨졌던 강남구와 서초구에도 역전세난이 닥친 만큼 다른 지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13억원에 계약이 됐으나 현재 호가는 9억5000만원 수준이다. 한강변 신축 대단지인 동작구 흑석아크로리버하임도 전용면적 84㎡가 지난 6월 14억원에도 계약이 됐지만 최근 호가는 9억원대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일선 중개업소에선 금리 인상에 따라 전세대출 부담이 늘어난 데다 매매시장도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이주 수요 자체가 막혀버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포동의 D중개사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반 하락하니 세입자들은 그대로 눌러앉거나 보증금을 더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다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갭투자를 했다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실거주하게 된 집주인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조만간 보증금을 못 돌려받아 세입자들이 경매를 신청하는 사례가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전세 매물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만1650건으로 3개월 전보다 57.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역시 6만7750건으로 49.7%, 인천은 1만5207건으로 35.2%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2년간 임대차3법과 저금리 영향으로 전세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 역시 역전세난을 심화시킨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기원 리치고 대표는 "지난 1~2년간 사상 초유의 저금리와 임대차3법이 맞물리면서 매매가뿐만 아니라 전세가에도 거품이 끼었던 셈"이라며 "최근 고금리로 거품이 빠지면서 역전세난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내년에 서울, 특히 강남에 입주물량이 많기 때문에 강남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잔금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금리 기조가 꺾이지 않는 한 당분간 전세가와 매매가의 동반 하락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동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금리 인상 충격이 사라지기 전까지 동반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지난 상승기는 갭투자가 견인한 측면이 큰데 최근 전세가가 떨어지면서 한동안 갭투자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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