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보호 위한 국제회의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이 채택된 이유

김기범 기자 2022. 11. 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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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습지인 우크라이나 버스틴(Burshtyn) 저수지의 조류들 모습. 람사르협약 사무국 제공.

“철새 등 생물종 보호를 위한 람사르협약 당사국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즉각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습지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와 중국 우한에서 동시에 열린 제14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COP14)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시작된 람사르협약은 철새 등 특정 생물종의 생존을 위한 생태계의 보존을 목적으로 삼는 국제협약이다. 지난 5일(현지시각)부터 시작된 이번 당사국총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대면, 중국 우한에서는 화상 등 이원으로 진행됐다.

습지에 사는 생물 보호를 위한 국제회의에서 전쟁 규탄 결의안이 채택된 이유는 바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내 습지가 광범위한 파괴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환경전문매체인 어스닷오아르지(earth.org)와 WWF(세계자연기금) 등 국제환경단체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의 람사르습지 16곳 60만㏊(헥타르)가 전쟁으로 인해 훼손되면서 해당 습지에 사는 생물종들이 위협받고 있다. 람사르습지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 자연보호구역의 20%가 전쟁으로 훼손되고 있고, 유럽의 자연보호네트워크인 ‘에메랄드 네트워크’ 내의 290만㏊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람사르습지인 우크라이나 포호리레츠(Pohorilets)강 상류의 모습. 람사르협약 당사국 제공.

현재 8개의 자연보호구역과 10개의 국립공원이 러시아군에 점령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환경보호 및 천연자원부 차관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자연보호구역의 3분의 1 이상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환경단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인권적인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뿐 아니라 돌이키기 어려운 환경범죄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람사르습지는 보전가치가 높은 습지를 당사국의 신청을 받아 등재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2471곳이 등재돼 있고, 한국에도 고창갯벌, 제주 동백동산, 인제 대암산 용늪 등 람사르협약에 따라 등록된 습지가 24곳 있다.

3년마다 열리는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석한 환경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이 결의안 관련 투표에는 172개 회원국 가운데 104개국이 투표에 찬성했고, 50개국이 찬성했다. 반대는 7개국이었고, 47개국이 기권했다.

람사르협약 사무국에 따르면 이 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것은 람사르습지 피해를 보고 있는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연합 회원국, 미국, 일본, 호주 등 36개국이다. 한국은 회의에서 찬성 발언을 하거나 결의안 채택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표결에서는 찬성 쪽으로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러시아, 중국,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 등은 이 결의안이 람사르협약에서 다루는 범위를 넘어 정치적인 내용까지 다루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채택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1년 역사의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당사국들이 투표로 의결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여기에 기권한 나라가 47개국에 달하는 것도 이번 규탄 결의안이 매우 민감한 내용이었음을 의미한다.

람사르협약 사무국이 공개한 결의안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람사르습지)가 피해를 보는 등 환경 비상사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결의안에는 “러시아는 람사르습지 내에서 군사 활동을 수행했으며, 이는 국경 지역과 최전방 근처에 있는 15개의 람사르습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당사국들은 결의안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개시 이후 러시아에 의해 일어난 우크라이나 내 습지에 대한 모든 환경적 피해를 규탄한다”며 “람사르습지 보호, 복원에 관련된 우크라이나의 배타적 주권 이행을 막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당사국들은 러시아에 “람사르습지에서 모든 군사력을 즉각, 완전히, 무조건 철수하고, 람사르습지를 추가로 훼손할 수 있는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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